‘진짜 부자’들은 이제 명품으로 온 몸을 치렁치렁 장식하지 않는다. 루이뷔통이나 불가리, 프라다 같은 브랜드들은 이제 그렇고 그런 ‘부유층’들이 얼마든지 향유할 정도로 ‘대중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을 통해 차별적 위상을 스스로 확인했던 ‘진짜 부자’들의 소비는 따라서 보다 복잡하고 은유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1월6일자)에서 진단했다.
‘비과시적 소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잡지는 ‘진짜 부자’들은 더 이상 과시적 소비에 매달리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는 신흥 ‘부유층’의 증가, 극단적인 소비패턴의 변화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대신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해 고가 명품을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베블렌 효과’는 새로 ‘부유층’이 된 사람들의 소비 행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명품 트렌드를 연구하는 레드버리 연구소측은 “21세기에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부자 기준이던 백만장자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2004년 전세계에 100만 달러 이상 재산이 있는 가정은 전년보다 7% 늘어난 830만에 이른다. 명품 소비는 러시아 인도 브라질 중국에서 특히 급증하고 있다.
메릴린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이 해외에서 구매한 명품이 전세계 명품 매출의 11%를 차지했다.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팀에 4억 달러를 ‘소비’했다.
선진국에서 명품 소비는 두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 먼저 명품만을 쫓거나 아예 따르지 않는 선택적 과소비 행태다. 다른 흐름은 ‘지분 소유’ 방식의 증가다.
디자이너의 핸드백을 빌려 쓰는 방식인데, 이 결과 과거 극소수의 ‘진짜 부자’들이 누리던 많은 것들에 일반인의 접근이 가능해졌다.
그러면 ‘진짜 부자’들은 과시적 소비를 포기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인이 알 수 있는 방식은 줄었지만, 이들이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방법은 더 복잡해졌다고 분석했다. 우선 이들이 소비할 때 관심은 만족에 가 있다.
초(超)소비로 불리는 이런 행태는 사회적 지위가 아닌 자신의 즐거움, 자기 관리를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들의 관심은 자녀를 최상급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은 오늘날 최고의 명품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명품 대중소비 시대에 고상한 지위의 진정한 상징은 ‘과시적 비소비’라고 했다. 이는 데이비드 브룩스가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Bobos in Paradise)’에서 묘사했듯 꾀죄죄한 옷차림이나 낡은 차를 타는 부유층 모습에 그치지 않는다.
일례로 자선이 점점 유행하고 있는데, 억만장자 빌 게이츠의 기부는 분명히 과시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과시적 비소비의 최고 자리에는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같은 미국 부자들을 올렸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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