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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쇼크, 진실에서 희망을 찾다/ (상) 젊은 과학자들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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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쇼크, 진실에서 희망을 찾다/ (상) 젊은 과학자들의 고뇌

입력
2005.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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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고통스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의혹에 대한 취재를 해 나갈수록 기자는 두려웠다. 그리고 하나씩 신화의 꺼풀이 벗겨져 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괴로웠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그 누구도 덮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모두 절망하고 있지만 고통 끝에 진실을 찾았기에 그 절망은 역으로 희망이기도 하다. 황우석 쇼크, 그 취재현장에서 부닥쳤던 이야기와생각을 3회로 정리한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진상이 오리무중으로 빠져들던 즈음 기자는 펜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때 브릭(BRICㆍ생물학연구정보센터), 사이엔지(한국과학기술인연합)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피펫(흡입관)을 놓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는 글을 읽었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과학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험적 증거에서 출발하는 과학자들은 “PD수첩이 강압취재를 한 게 사실이라 해도, 줄기세포 DNA가 환자 것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들은 현란한 수사(修辭)가 아닌 과학으로 황 교수팀이 권위를 되찾기를 바랐다. 그들이 원한 것은 과학적 진실이었을 뿐이다.

논문 속 사진이 똑 같은 거라면 사이언스 심사위원들이 몰랐겠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미국의 한 박사후 연구원(포스트닥)이 실제 실험을 했다.

황 교수 논문 보조자료를 크게 프린트해 전공자들 앞에 내건 후 “문제를 찾아 보라”고 했을 때는 아무도 사진 중복을 거론하지 못했다. “중복 사진을 찾아보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문제의 사진을 골라냈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조차 실험과 근거를 사용했다. 서울대 조사 결과 그들이 옳았다.

황 교수 논문에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쓰면서 기자는 “왜 잘 나가는 사람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욕설이 담긴 메일도 많이 받았다. 기자 역시 황 교수의 논문 조작을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비과학적 논리가 여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황 교수팀 주변의 많은 과학자들은 PD수첩의 DNA검사가 오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에게 취재하니 대답이 달랐다.

기자는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이 9일 정운찬 총장에게 학교 차원의 검증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낸 후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근심어린 표정이었다.

“중진 교수 중 저희에게 전화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고했어’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어요. 최소한 생명과학 전공자들은 누구나 이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압니다. 다만 여론이 이렇게 안 좋으니 걱정입니다.”

과학적인 검증을 하자는 건의를 하기까지에는 마치 독립운동과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에겐 “우리 과학계의 문제는 사이언스도, 외국 과학계도 아닌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치된 정서가 있었다.

젊은 과학자들의 열의를 보면서 기자는 김선종 연구원에 대한 안타까움과 좌절에 시달렸다. 브릭에 글을 쓰는 이들이나 김 연구원이나 비슷한 처지의 연구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을 늘려라”는 황 교수의 지시에 “나는 그레이드(등급)가 아직 낮아서 말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비단 김 연구원 개인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물론 그에겐 잘못된 지시를 거부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 하지만 거부하기 위해선 아마도 브릭에 글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선택이 주어졌을 때 옳은 길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실험실의 실상을 보자. 한 대학교수는 “교수의 부당한 요구에 자기 의견을 밝힌다면 당장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더라도 왕따가 될 것이다.

졸업이 최우선 순위인 학생들은 교수가 시키는대로 하고, 논문에 이름을 서로 넣어주고, 들어온 순서대로 졸업할 뿐이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한 연구교수는 “괜찮은 저널에 논문을 하나 내고 학과 교수에게 불려가 심한 말을 들었다. 왜 자기하고 상의도 없이 맘대로 논문을 내느냐는 것이다. 다른 교수와 학생들 이름을 넣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고 말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석ㆍ박사 연구원들의 인건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연구원이 자기 통장과 도장을 아예 교수에게 맡겨 버린다.

한 교수는 “랩장(실험실 장)이 통장을 관리하며 회식비 정도로 쓴다면 다행이나, 교수가 10개 통장을 들고 직접 관리하는 것도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김선종 연구원이 잘못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우리에겐 악습을 철폐할 제도가 필요하다.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이 주장했듯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제도화하고, 브릭 회원들이 논의하듯 연구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황 교수 쇼크는 장기적으로 우리 과학계에 득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희망을 본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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