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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대중화의 올바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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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대중화의 올바른 길

입력
2005.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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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클래식음악계의 커다란 화두는 ‘클래식의 대중화’인가, ‘대중의 클래식화인가’였다. 이 기분 나쁜 말들은 얼핏 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속뜻은 대중을 위해 클래식음악이 낮아질 것인가, 아니면 대중을 교육시킬 것이냐라는 것인데, 음악계는 대충 후자에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인다. 상한 과일 두 개 갖다 놓고 골라라 하는 식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방법 모두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대중을 교육시키겠다니, 도대체 누가 교육자이고 누가 대중이란 말인가? 대중이라는 이름을 그렇게 쉽게 사용하는 사람은 대중과 자신을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 자신은 클래식음악에 견해가 깊지만 대중은 그렇지 못하다고 은근 슬쩍 얘기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인가? 대중이 모두 교양있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아니다. 정답은 우리 모두가 예술 앞에서는 무지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예술인의 오만한 관점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관객에게도 전염되기 쉽다.

아는 관객은 모르는 관객을 무시한다. 오늘날 공연장 가는 것에 대한 정의가 ‘돈 주고 표 사서 교양없는 사람 아닌 척하려고 2시간 이상 애쓰다 오는 것’은 아닐까?

대중을 위한답시고 골백번도 더 들은 가곡이나 메들리만 연주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른바 ‘대화가 있는 음악회’에서 사회자나 연주자가 마이크를 붙잡고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만…”이라고 말문을 열며 초등학교 음악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자, 여기 진정한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술가가 대중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서태지는 우리에게 록음악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는 록을 사랑했지만 가장 대중적인 힙합래퍼로 다시 태어나 우리를 슬금슬금 그가 원하는 무대로 끌고 갔다.

클래식 음악인이 대중 앞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돈 많은 집에서 곱게 자란 귀족일 뿐이다.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다. 우리가 곧 대중임을 인식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당신이 원했던 것이라는 것도.

1층 객석의 S석에 앉아있는 평론가나, 무대 위의 연주자도, 저 밖에 있는 주차 도우미도 그 음악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누가 더 가까이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음악은 교육받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성을 이용해 자신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는 사람이 진짜 대중이며 음악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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