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도입 100주년인 올해 6월5일 한국야구사에 큼직한 획이 그어졌다. 무명의 ‘공주 촌놈’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뛰어든 지 11년 만에 통산 100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린 것이다. 고교, 대학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였기에 그의 성공은 더욱 값졌고, 과정 역시 드라마틱했다.
1994년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정신없이 데뷔전을 치른 그는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밀려 내려갔고 2년간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96년 4월7일 시카고 컵스전에 구원등판해 첫 승을 신고한 박찬호는 이듬해부터 매년 10승 이상의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메이저리그가 인정하는 ‘코리안 특급’으로 우뚝 섰다.
호사다마일까. 5년간 6,500만 달러의 대박을 터뜨리고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둥지를 옮긴 박찬호에게 길고 긴 시련이 찾아왔다. 2002년 9승으로 두 자릿수 승수 쌓기에 실패했고 허리와 허벅지 부상으로 2003년 1승, 지난 해 4승에 그쳤다. 팀은 물론 언론의 호된 질책이 쏟아졌다.
올 시즌 초반 눈부신 피칭으로 100승을 달성한 뒤에도 시련은 이어졌다. 100승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7월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됐고, 샌디에이고에서는 포스트시즌 로스터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올 시즌 12승(8패)란 괜찮은 성적을 냈지만 ‘타자를 제압할 만하다’는 감독의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박찬호(32)에게 20대 전성기 때와 같은 불 같은 강속구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무기의 화력은 약해졌지만 재일동포 3세 박리혜(29)씨와 결혼하며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를 얻었다. 심리적 안정은 경기력 향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가 내년 시즌 또 한번 도약하기를 기대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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