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토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온 미국에서 ‘시민권 자동부여(birthright citizenship)’ 폐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AP 통신은 26일 ‘시민권 자동부여’ 조항을 폐기하는 이민국적법 개정안이 미 하원에 상정됨으로써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고 보도했다.
네이선 딜(공화) 하원의원 등 공화당 보수파를 중심으로 70명 이상이 발의한 개정안은 시민권 부여 조건으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또는 미혼인 엄마가 미국 국적 혹은 시민권자이거나 영주권, 체류를 합법적으로 허가 받은 외국인인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부모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니면 ‘시민권 자동부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 공화당의 톰 탄크레도 하원 의원이 부모가 합법 체류자여도 임시 체류자일 경우 미국 태생 자녀에게 시민권 부여를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는 등 미국 시민권 문턱을 높이는 움직임이 거세다..
개정안의 주 목표는 불법 이민자들이 합법적으로 미국 시민이 되는 길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시민권 자동 부여’ 정책이 불법 이민 양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불법 이민자들에겐 미국 땅에서 낳은 자식들이 나중에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통로이다.
불법 이민자 자녀들은 성인이 되면 부모 및 가족들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닻이 되고 있어 ‘앵커 베이비’로도 불린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10%, 즉 연간 40만 명이 불법 이민자의 자녀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원정 출산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법안이기도 하다.
‘시민권 자동 부여’ 조항은 아직 하원에서 통과하지 못했으나 찬반 논쟁은 뜨겁게 일고 있다. 미국이민개혁연맹의 아이라 멜먼씨는 “미국인 대다수는 불법적으로 입국한 사람들이 출산을 통해 새로운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이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며 개정안을 지지했다.
반면 이민자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반 이민감정을 조성하기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메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49%가 ‘시민권 자동부여’ 조항 폐기에 찬성한다고 답해, 현행 유지(41%)보다 약간 우위로 나타났다.
AP통신은 미국 사회가 140년간 확고부동하게 지켜온 ‘시민권 자동 부여’ 원칙이 쉽사리 폐기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남북전쟁 후 해방노예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속지주의 원칙을 만든 미국의 수정헌법 14조(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해 미국의 사법권에 들어온 사람은 미국의 시민이다)의 개정도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하더라도 이민 정책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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