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가 배아줄기세포 연구, 사학법 개정, 북한 인권 등 우리 사회의 현안에 목소리를 높인 한해였다. 종교가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오히려 확대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죽음 그리고 생명 나눔
법장 스님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스님은 심장혈관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9월 11일 심장마비로 열반에 들었다.
장기기증운동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을 지낸 고인은 생전에 시신, 장기 기증을 약속한 바 있다. 이 같은 뜻에 따라 법구(승려의 시신)와 장기가 연구용으로 기증됐다.
큰 스님이 열반에 들면 다비식을 하는 게 전통이지만, 법장 스님의 영결식은 종단장 사상 처음으로 다비식 없이 치러졌다. 스님의 시신, 장기 기증은 제자와 불교 신도, 심지어 타 종교 신도와 일반 국민의 장기기증 운동으로 이어졌다.
천주교에서도 생명운동이 그 어느 해보다 활발했다. 서울대교구는 10월 생명위원회를 발족하고 생명미사 등을 통해 낙태, 자살 등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 황우석과 종교
황우석 교수 연구의 허탈한 결과가 밝혀지기 직전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그랬듯 종교계에서도 그의 연구가 큰 관심사였다.
입장이 가장 확고한 곳은 천주교였다. 천주교는 6월초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하고 ▦복제인간의 출현가능성을 높이며 ▦여성을 난자 제공 등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우리 사회의 ‘황우석 신드롬’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에 황우석 교수와 정진석 대주교가 만나 의견을 나눴지만 근본적인 시각 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발족은, 천주교가 배아줄기세포의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천주교는 이를 위해 거금 1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견해는 개신교도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불교계는 불교 신자인 황 교수를 끌어안았다.
법장 스님의 뒤를 이어 조계종 총무원장에 오른 지관 스님은, 심포지엄에서 황 교수 연구를 지지하고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있던 그를 문병하는 등 천주교, 개신교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 사학법 개정안, 북한인권
사학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 천주교, 개신교 보수 단체들이 강도 높은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법 개정을 통해, 외부 인사가 학교 이사회에 참여하게 되면, 산하 학교의 건학 이념이 훼손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반대 논리였다.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고 학교 문을 닫으며 순교까지 하겠다는 극단적인 발언이 종교인의 입에서 나왔다. 천주교의 어른인 김수환 추기경마저 사학법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종교계에 반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은 사학법 개정안을 지지했다. 한기총과 더불어 개신교계를 양분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뒤늦게 나마 개정안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반대 측의 목소리가 워낙 큰데다, 보수세력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음으로써 이들 보수 종교세력이 사학법 논란을 주도하게 됐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 설득을 시도했지만 별 성과는 내지 못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보수 개신교계는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고 북한 정권을 비판했다.
이에 KNCC 등은 26일 성명을 내고 “북한 인권은 한반도의 전쟁 없는 평화와 민족문제라는 큰 틀에서 평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밖에
한국에 이슬람이 전래된 지 50년, 천도교가 동학에서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낸 지 100년이 됐다. 이를 기념해 한국이슬람중앙회는 국제학술대회를 열었고 천도교도 기념식과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개성 영통사가 천태종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는 등 남북간 종교 교류도 활발했다. 일부 개신교인은 부동산 투기를 배격하겠다고 다짐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박광희기자 khpark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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