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를 지나는 마음이 어둡고 쓸쓸하다. 한 해 뉴스를 다룬 행색이 초라하고 행적이 남루하다. ‘X파일’ 사건과 ‘황우석-PD수첩’ 파동은 언론계에 충격적 내용 만큼이나 큰 상처를 남긴 채, 한 해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언론계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고, 그 결과 사회는 두 사건 앞에서 공정성을 잃었다. 권위지 뉴욕 타임스는 50년 뒤의 역사가를 위해 오늘의 역사를 기록한다고 한다. 하여, 사마천처럼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시(是)인가 비(非)인가.
●X파일·PD수첩 앞에 공정했나
‘X파일’을 폭로한 MBC 이상호 기자와, ‘PD수첩’의 주역인 같은 회사 최승호 한학수 PD에게는 영욕이 함께 왔다. 우리 경험칙은 이런 사건이 훗날 재평가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만, 지금까지는 영광보다 치욕이 더 컸다.
이 기자는 ‘X파일’로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정ㆍ경ㆍ언ㆍ검 유착의 엄청난 비리의혹을 취재ㆍ공론화했다. 공익차원의 폭로였지만 그는 기소되었다. 반면 폭로 대상이었던 중앙일보 당시 사장과 삼성그룹 측은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 과정에 불법도청으로 획득한 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독수독과’론이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은 ‘독이 든 나무에는 독이 든 열매가 열린다’는 설의 혜택도 못 받고 불법도청 책임자로 구속되었으니 이상한 일이다. 또한 당시 대통령들로부터는 사과 한 마디 없다.
몸통은 끄떡 없고 깃털만 나부끼는 것은 검은 유착이 아직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언론사로 인해 전 언론계가 무력함을 씹어야 하는 비애가 쓰다.
이 기자는 시민단체가 주는 ‘민주시민 언론상’을 수상하게 된다. 반면 언론인 단체 관훈클럽은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에게 관훈언론상을 준다. 그는 이상호 기자가 법률적ㆍ도의적 문제로 ‘X파일’ 보도를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그 녹취록을 입수해 안전하게 보도한 경쟁자다. 그의 수상도 축하할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표방해온 관록 있는 관훈클럽 정도라면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 이상호만 택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두 기자를 공동시상 해야 마땅할 것이다.
언론 세미나에서 개진된 한 논설위원의 발언이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기자가 ‘X파일’을 제보 받고도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는 기자가 아니다.” 전에도 이 칼럼(8월 9일자)에서 쓴 적이 있지만, 2001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도 통신비밀 보호보다 언론자유를 앞 세워 인정하고 있다. 한 라디오가 익명의 제보자가 불법으로 녹음한 두 교원노조 간부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계속 방송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PD수첩’ 팀은 회사로부터 감봉, 근신 등 징계를 받았다. 황 교수의 논문조작의 진실과 관계없이 제작진의 취재윤리 위반을 벌한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결국 'PD수첩’이 제기한 의혹들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이 취재팀은 ‘시사저널’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명예를 누렸다.
이 과정에 많은 언론이 오류를 범했다. ‘PD수첩’에 돌을 던졌다. 지금 일일이 그 부끄러움을 고백할 면목도 없다. 그러나 한 중진 언론인의 왜곡된 칼럼과, 그 아류들을 간과하기엔 너무 고통스럽다.
●언론의 새벽은 아직도 멀기만
<황우석과 mbc pd수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상한 현상을 목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pd수첩의 보도를 옹호하거나 더 나아가 ‘황우석 깎아 내리기’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과학에 이념을 들이댄 자체가 허황되지만, 적대적 원리를 내세워 습관처럼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그의 안목과 글쓰기가 초라해 보인다. 황우석과>
그러나 역으로 황 교수와 이 중진 언론인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과 부조리를 드러내 준 점에서 고맙기도 하다. 언론의 새벽은 아직 먼 모양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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