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은 필요없어…기술로만 돈 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이곳을 가로지르는샌토마스고속도로2701번지에‘엔비디아’(Nvidia)라는 이름의 반도체회사가 자리하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용칩셋을 만드는 이 회사는 지난 회계연
도(2004년)에 20억달러(2조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익은 6억5,000만달러(6,630억원)로 매출의 33%에 이른다.엔비디아는 요즘 실리콘밸리의 반도
체 기업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보여주는‘교과서’다.이 회사는 1993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단한번도 생산 공장을 가져본적이 없다. 엔비디아측은“지난 10여년간 개발한 100여개의 반도체 칩셋 생산을 반도체 위탁 생산 전문 업체(파운더리)에 맡겨 왔다”고 밝혔다. 파운더리에서 만들어진 반도체는 엔비디아를통해 전 세계의 PC용 그래픽 부품 제조업체로 팔려간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사가 거두는 이익은 30~4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마진율을 서너배 이상 뛰어넘는 고부가가치다.이러한 반도체 사업 방식을 공장(factory)이 없다고 해서‘팹리스’(Fabless)방식이라고 부른다. 제품을 생산하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역량을 연구^개발(R&D)에 집중할수있다. 엔비디아는 2,101명의 직원 중 연구인력의 수가 1,231명으로전체 직원의 60%에 육박한다. 지난해 R&D에 투자한 금액은 3억4,000만달러. 생산 시설도 없는 회사가 순수R&D에 순익도 아닌 매출의 17%를쏟아 부은 것이다. 막대한 인력과R&D 투자를 바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쌓은 덕분에 엔비디아는 현재 전 세계 그래픽 칩셋 시장에서 30%대의 시장점유율을 고수하고 있다.지금 실리콘밸리에는 반도체를 직접생산하는 업체들이 사라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자 협회’가 최근‘제조’라는표현을 빼고‘반도체 기술 리더 협회’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다. 산타클라라인텔(Intel) 본사 건물에 붙어 있는 플래시메모리 제조 설비가 실리콘밸리에 존재하는 유일한 반도체 공장이다. 실리콘밸리의 신세대 반도체업체들은 대부분 IBM이나 대만 UMC, TSMC 같은 파운더리 업체를 이용하고, 사실상R&D로 돈을 번다. 당연히 압도적인 R&D 경쟁력의 확보와 업계 표준 기술의 선점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를수밖에 없다.
R&D로 돈을 버는 대표적인 기업이 퀄컴(Qualcomm)이다. 퀄컴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과 광대역CDMA(WCDMA) 원천기술을 이용해 지난해 51억 달러(5조2,000억원)의 매출을올렸다. 퀄컴의총수입 중 30%는 기술사용권 판매(로열티) 수익이고, 나머지70%는 통신 칩셋 판매에서 나온다.
퀄컴은 원천 기술에 기반한 반도체 디자인만 담당하고 생산은 파운더리 업
체에 일임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의‘하버드 비즈니즈 리뷰’는이러한퀄컴의 사업 방식을“미래의 기업들이 본받아야 할 성공사례”로 평가한 바 있다.
퀄컴은 지난해 매출의27%를 R&D 비용으로 지출했다.1970년대에 반도체메모리로 시작해 80년대와 90년대 PC용 중앙처리장치(CPU)로세계 반도체 업체를 지배해온 인텔도퀄컴과 엔비디아의 성공사례에 주목하고있다. 인텔은‘기술’을 팔아야 반도체를 팔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자사의플랫폼 기술을 마케팅 하는데 힘을 집중하고 있다.플랫폼은 다양한 IT 기기들이 공유
하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로, 흔히바탕 기술이라고 한다. 플랫폼에 의존
하는 대표적인 제품이 PC다. 전 세계 수백개의 PC 업체가 만든 수천 종류의
PC가 완벽하게 호환되는 것은 모두 인텔이 개발한 PC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
로 하기 때문이다.인텔은 휴대폰(스마트폰)과 디지털TV, 통신장비, 셋톱박스 등 사실상 모든 디지털 기기에 자사의 플랫폼 기술을 보급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인텔의 주력인 PC용 CPU 시장보다 수십배 큰 시장이 열린다. 지난해 전 세계PC 생산량은1억5,000만 대내외로 추정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 휴대폰 생산량의 4분의 1에 불과하다.퀄컴처럼 반도체 제조를 위탁하고,
적극적으로 기술사용료를 거두는 전략을 택하면 R&D만으로 막대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스틴 래트너 인텔 기술그룹장은“인텔의 목적은 업계의 기술 혁신을 촉발시키고,소비자들이 낮은 비용으로 첨단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데 있는만큼 반도체 제조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 인텔“플랫폼 기술을 공략”
인텔은 자사의 플랫폼 기술 확산전략에 따라 주력 사업인 중앙처리장치CPU)외에도 광범위한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미래 산업 전반에서 기술 영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겠다는 것이다.인텔의 첫 번째 공략 대상은 무선통신분야다. 앤디 그로브 인텔회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모바일 기기가 기존 PC 시장의 규모를추월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통신 플랫폼 기술 개발을 강조했다. 그 첫번째 성과가 2003년 발표된‘센트리노’(Centrino)무선노트북PC
기술이다. 인텔은 무선인터넷 기술을 노트북PC의 일부로 끌어들여 CPU와 한 묶음으로 정착시켰다. 현재 국내에서 팔리는 노트북PC 중 72%가 센트리
노 플랫폼에 바탕하고 있다.인텔은 센트리노를 성공시킨 자신감으로‘와이맥스’(WiMAX) 분야에 진출했다. 와이맥스는 기존의무선 랜보다 2~3배 이상 빠른 차세대 무선인터넷 기술이다.한국형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도 인텔이 주도하는‘모바일 와이맥스’ 기술에 포함돼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캐빈칸 인텔무선 기술개발책임자는“정지상태에서는 무선 랜과 와이맥스를 이용해서, 이동 중에는 모바일와이맥스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끊김 없는(seamless) 접속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텔은 앞으로 노트북PC 뿐만아니라 휴대폰과 휴대인터넷 단말기에도 자사의 CPU와 와이맥스가결합한 제2의 센트리노 기술을 선보일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인텔의 모든 반도체 기술에 무선통신을 접목하는‘라디오 프리(Radio Free) 인텔’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텔의다양한플랫폼기술을갖다쓰는것만으로 다양한 유비쿼터스(Ubiquitous)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인텔은 이미 10년 후를 내다보는 플랫폼 기술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오레곤주에서반도체 기술에 레이저를 접목한‘실리콘 포토닉스’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의 초고속인터넷보다 50배이상 빠른 초광대역 통신 기술이다. 인텔은 2007년까지 PC와 PC간의 연결에 이 기술을 도입하고,장기적으로는 장거리 통신과 PC내부의 데이터 통신에도 도입해‘빛으로 움직이는 PC’ 기반 기술
을 내놓을 계획이다.인텔은‘아이모트’(iMote)는 비장의 기술도 갖고 있
다. 일종의 초소형 인공지능 로봇으로, 수백개의 아이모트가무선인터넷으로 연결돼 무선센서네트워크(WSN)을 구성하며 온도와 습기,압력은 물론 영상이나 소리처럼복잡한 데이터까지 수집할 수 있다.
로봇 한 두개가 유실돼도 다른개체들이 자동으로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인텔의 랠프 킹 박사는“아이모트는 기상이나 천재지변의 예측, 군사작전, 우주 탐사, 그리고 보안등의 용도에 폭 넓게 활용될 수 있다”며“쓸모가 무궁무진한 만큼 시장 가능성도 엄청나다”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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