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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코리안 스탠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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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코리안 스탠더드

입력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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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신이다. 외국의 주요언론이 한국과학계의 풍토, 심지어 나라 전체의 풍토를 문제 삼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선 지도교수의 권위가 너무 절대적이고, 연구실이 조립공장처럼 분업화돼 있어서 어떤 조작도 가능하다.

AP통신처럼 ‘빨리빨리 문화(Hurry-hurry Culture)’가 문제라면서 황우석 교수 사태가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맥이 닿는다고 주장한 언론도 있다. 어떤 미국 기자는 서울에서 고3수험생을 취재하고 “1등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황 교수와 유사하다”는 식으로 적었다.

이런 기사들을 우리 특파원과 국제부 기자들이 다시 정리해서 국내매체에 소개하기도 한다. 이른바 ‘외신반응’이다. 지난달 12일 제럴드 섀튼 미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선언이 보도돼 이번 사태가 처음 불거진 이후, 우리 신문 지면에는 유독 외신반응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기사들을 읽으면 “한국 사람을 다 거짓말쟁이로 알겠네”라고 한숨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외국 신문에선 극히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 언론 보도를 종합한 기사를 내지 않는다. 가령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후 미국 신문 지면에는 ‘이것이 과연 미국인가’는 등 개탄이 넘쳤다. 하지만 외국 언론 반응이 실리지는 않았다. 일본 신문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에 눈에 비치는 모습에 신경을 많은 쓰는 편인 것 같다.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물론, 자기 혐오에 빠질 때도 외국의 눈을 통해 되새김하고,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로 세계시장을 두드리던 때의 습관이 아닌가 싶다. 처음 해외에 수출을 하던 우리는 외신 평가에 그야말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령 1970~80년대 외신이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과 함께 붙여준 ‘4마리의 용’이라는 별명은, 우리를 얼마나 기분 좋게 했던가. 또 89년에는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서울에 와 “한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기사를 써 파장을 불렀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되뇌면서 반성을 했고, 임금인상을 자제하자고 까지 했다.

조금 뒤 나온 ‘포니차 수준을 못 따라오는 한국의 정치’라는 기사도 훗날 대선구도에까지 영향을 준 히트작이었다. 정작 미국에선 얼마나 읽힌 기사들인지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해외의 권위에 의존하는 이런 습성은 수출입국시대의 잔재일 수 있다. 이는 또한 황우석 사건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번 사기극의 본질이자, 함정일 수도 있다. 황 교수가 국민 영웅이 된 것은 2004년 3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리면서부터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 전체가 사실상 미국 학술지의 위광(威光) 하나를 믿고 올인 한 것이나 다름없다.

올해 논문에서 실험에 참가도 하지 않은 섀튼 교수를 끌어들인 것도 결국은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한 수법이 된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의혹을 제기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 이유 또한 그 권위 때문인 것이다.

황우석 사건 이후 우리가 나아갈 길은 상품, 기술의 수출이 아닌 권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엄정한 기준을 확립하는 게 그 지름길이다. 다행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조사는 모두 한국에 의해, 새로운 스탠더드를 만드는 과정이 되고 있다.

여기에도 경쟁은 있다. 황 교수 논문의 공동검증을 제안했던 에딘버러 대학의 이안 월무트 박사 등 8명의 외국 학자들은 생명공학 연구조작의 재발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착수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외신이 전해준 소식이다.

유승우 국제부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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