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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45)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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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45)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입력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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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잦은 통음난무와 게으르게 젖혀둔 일상 대소사들로 휘청거리는 와중에 불현듯 스스로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대개의 경우 그 의문은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반성적 자각의 시발이 된다.

상당히 곤혹스럽고 소름끼치기까지 한데다가 대답마저 불분명하지만, 그럼으로써 낯설게 되돌아보는 자신이 문득 멈춰버린 시계추처럼 일순간 명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설령 지금의 삶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분명하게 감지하게 되는 그 순간만큼은 잘못 살고 있는 그대로 온전한 자기 자신의 삶이 된다. 그건 세간의 옳고 그름이나 미추(美醜) 판단을 잠깐 동안이나마 초월하여 그 누구보다도 독립적으로 자기 자신을 헤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건 일종의 심리적 해방구이자 흔치 않은 영적 감화가 발생하는 자아의 사원과도 같다. 그 상태로 펼쳐보게 되는 어떤 이의 책 속엔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듯 여겨진다. 나는 이러한 심리적 이완과 이율배반적인 자기도취를, 감히 명명컨대, ‘신성한 착각’이라 부른다.

그 ‘신성한 착각’ 속에서 내가 순전히 나의 얘기인 양 영혼의 급물살을 방조하며 재독에 삼독을 거듭하는 책은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집 ‘활과 리라’(김홍근, 김은중 옮김, 솔출판사)이다.

1980년대 말부터 몇몇 문예지 등에 간헐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다가 1996년부터 2년 동안 월간 ‘현대시학’에 전문이 연재되었던 이 책은 1998년 온전한 전집 형태로 출간되었다. 옥타비오 파스가 이 책의 초판을 발표한 건 42살이던 1956년이었는데, 파스 스스로가 자신의 많은 저작들 중에서 가장 애정을 갖고 있다고 고백했을 만큼 파스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시를 얘기하면서 삶의 근원적 원리와 세계의 가려진 심급을 들춰내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통시적으로 꿰어냄으로써 시의 태생적 위의(威儀)와 가치, 그리고 시적 방법론을 한꺼번에 통찰해내는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대개의 이론서처럼 딱딱하고 편협한 문학 이론에만 연연하지 않는 탓에 삶과 예술에 대해 궁구하며 방황하는 자들에겐 누구보다도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전도서로 읽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최고의 힘은 심장으로 직통하여 혈관 속을 부드럽게 흐르면서 오감을 번쩍번쩍 뜨이게 하는 문장의 밀도와 리듬감에 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완곡하고도 드센 거두절미로 시작한다.

‘시는 앎이고 구원이고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시는 격리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여행에의 초대이자 귀향이다. 시는 들숨과 날숨이며 근육운동이다.…’ - ‘활과 리라’ 도입부

이렇듯 모두(冒頭)에서부터 상호대립되는 개념들의 리드미컬한 병렬, 확신에 찬 명명과 공명이 큰 비유들이 범벅된 서른 개의 문장들로 정의된 시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출발점이자 미리 예시된 결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현란하고도 다채로운 명명법에 대한 파스 나름의 신념과 애정, 논리와 열정이 심원한 북소리처럼 길고 깊고 긴장감으로 풍성하게 교호하는 게 이 책의 내용이자 형식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모든 경전이 주술적 반복을 통해 의미의 육화를 강화하듯, 이 책은 파스 특유의 밀교적 관능의 언어들로 소위 육체적 정신적 통일체로서의 시의 현현을 계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읽는 이의 영혼을 저 나름의 궤도에서 분방하게 비약하게 하는 동시에 일순간 바닥까지 추락하여 판도라의 상자처럼 굳게 닫힌 시와 삶의 궁극을 뼈저리게 숙고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태양까지 날아오른 이카루스의 날개와 그 날개에서 녹아내려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는 밀랍의 찌끼들이 쉼 없이 서로를 부추기고 갉아먹는 모순된 시적 신화의 방대한 미로와도 같다. 그 미로는 때론 따뜻하게, 때론 엄밀하고 정밀하게, 때론 분방한 비약으로 영혼의 기저를 에워싼다.

타자와 자아가 수시로 동일시되었다가 다시 해체되고, 고립무원의 절망감이 고도의 시적 비약을 통해 세계의 원형을 파헤치는 활화산의 밑불처럼 무시로 생동하기도 한다. 그 무한한 반복의 힘이 다름아닌 시의 기원이자 궁극의 결론이란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의 출발점에 놓인 시에 대한 서른 개의 정의(定意)들은 그러므로 한없이 반복하고 재생성되는 시의 본질을 잠정적으로 지시할 뿐, 시의 본질 자체를 확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확정될 수 없음은 시가 가진 엄밀한 물질성을 역설적으로 환기시킨다. 파스는 그것을 ‘한 순간이며 결코 어느 순간도 아닌 순간. 한 순간이며 영원한 순간. 과거이며 미래인 痔瑛?순간. 한 순간 태어나고 죽는 것.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삶이며 죽음이고, 이것이며 저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시는 그 ‘한 순간’을 지시하는 잠정적이고도 영원한 죽음의 현존인 것이다.

죽음은 삶의 한계와 가치를 동시에 규정짓는 불굴의 조건인 동시에, 현재의 삶을 다른 것으로 변하게끔 하는 유일무이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시는 삶의 한복판에 암장된 죽음의 불길을 일으켜 삶을 더욱 삶답게 하는 일이 된다. 그때 죽음은 시뻘건 생명력의 원형이나 마찬가지다.

파스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인간 정신의 지하에 묻힌 보화(寶貨)를 깨냄으로써 삶의 영역을 넓히고 세계의 뿌리를 더듬어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세상 만물의 통일된 원리를 깨우치는 신성한 과업이었다. 그 과업의 정점에서 열정과 신념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과 집요한 이론적 탐구를 일체화하려는 노력의 결정판이 바로 ‘활과 리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적 전통에 기반하여 인도와 일본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경도된 동양 사상,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난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적 방법론을 체화함으로써 이루어진 방대한 사상의 결과물인 동시에 파스의 삶과 시 전체를 아우르는 주춧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지식의 첨단을 지향하기 보다는 모든 지식의 총화를 통해 궁극의 지적 백지 상태에서 자연발생하는 시의 그림자를 시종일관 좇는다. 그 끈질긴 추적과 탐색과 좌절 속에서 시는 때로 물길처럼 유장하게 흐르다가 불이 되어 솟구치기도 하고, 쉼 없이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 다음에 불현듯 진동하는 침묵의 이명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그 지난한 시적 여정 속에서 이 책은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읽힐 때마다 다시 씌어진다. 적어도 내게 이 책은 빽빽한 채로 텅 비어 있는 400페이지짜리 빈 노트이다. 그 방대하고도 허망한 공동(空洞)엔 지금의 내가 오래 전이거나 먼 미래의 형태로 부지불식 드나들다가 죽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이 책을 정의하건대, 이것은 뚜껑이 열린 채로 저 홀로 방기된 시의 유골단지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마음껏 휘날리는 죽음의 먼지들이 삶의 한 복판에 생경한 훈향처럼 돋을새김하며 축 처진 정신의 피륙들을 소스라치게 한다. 그걸 깨닫는 순간, 세상은 죽음의 형식으로 늘 현존하는 시의 납골당이나 진배없다.

납골당의 문이 열리며 시의 혼령들이 걸어 나올 때, 아, 이 세상은 분명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다른 세상이 아닌가. 그 다른 세상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나만이 아니다.

아울러, 나는 세상 도처에 널려 있는 그 많은 돌멩이와 나무와 새와 물길처럼 오로지 나 자신으로서의 나이다. 그리하여 나란, 나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평생토록 써나가야 할 부실하고도 완전한 책 한 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 통렬하고도 허망한 깨달음에 등 떠밀며 나는 또 세상의 텅 빈 노트들을 더듬는다. 그리고 쓴다. 또 그리고, 여전히, 씌어지지 않는다. 喝!

시인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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