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성당 짓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야단인지 모르겠군요.”
광주 동구 학운동성당 이성규(59) 주임신부는 22일 광주 광산구 수완동성당을 짓는데 써달라며 10억원의 사재와 1억5,000만원 상당의 땅을 광주대교구에 기증했다.
인터뷰 요청을 수 차례 거절하던 그는 “숨기고 싶었는데 알려져 민망하다”며 “사제가 돈을 갖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이제 마음이 가뿐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성탄절인 25일 아침 미사를 통해 “불우한 이웃을 돕고 사랑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며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가 성당 건립에 사재를 턴 이유는 44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고향인 수완동에 성당이 없어 어린 시절 4㎞ 정도 떨어진 비아공소(현 비아동성당)에 걸어 다니면서 “우리 동네에도 성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6세에 영세를 받은 그는 그때부터 성당을 짓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했다. 하지만 50여 세대가 사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고, 그가 동네에서 유일한 신자였다. 집안의 반대로 신부도 되기 힘들었으며, 1975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에야 형제와 친척이 한명씩 영세를 받기 시작했다.
‘44년 전부터 이어졌던 소년의 기도’는 최근에야 응답을 받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광산구 수완지구 땅이 택지개발이 이뤄져 보상금이 나왔다. 여기에 민주화운동 보상금, 정기예금 등을 합치니 10억여원이 됐다. 전남 나주시 영산포에 있는 230여평(시가 1억5,000여만원)의 땅도 보탰다. 지난 22일 광주대교구가 수완동성당 부지 900여평을 계약하자 일부를 보탰고, 내년 1월 정기예금을 타서 약속한 10억원을 낼 예정이다. 영산포 땅은 1990년대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으려 매입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이번에 함께 내놓았다. 민주화보상금을 받게 된 것은 1980년 9월 강원 화천군 모 부대에서 군종신부로 재직할 때 미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를 이야기 하는 바람에 서울까지 끌려와 40여일간 고초를 겪은 대가(?)였다.
그의 별명은 ‘구두쇠’와 ‘깍쟁이’. 전깃불과 수돗물을 아껴쓰라고 말하며,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낭비를 줄여 이웃을 돕는 데 쓰라고 늘 ‘잔소리’를 해왔다. “44년 전부터 드렸던 기도가 이뤄져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 성당에서도 많은 기도와 사랑이 이뤄질 것으로 믿습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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