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프랑스 파리국립박물관에 있는 강화도 외규장각 의궤(儀軌) 반환 문제가 국가적인 관심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는 조선 의궤 전문가가 없었습니다. 국내 어디에 몇 종의 의궤가 있는지 서지사항을 정리한 책도, 내용을 풀이한 해제집도 전무했습니다.”
마침 그때 한영우(67) 교수(현재 한림대 특임교수)는 조선 의궤의 거의 90%(전체 553종)를 소장한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을 맡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한 교수는 규장각이 앞장서서 의궤 자료집과 영인본 사업을 펴야겠다고 결심하고, ‘화성성역의궤’를 비롯한 의궤 컬러 영인작업을 시작했다.
연구원들과 함께 규장각에 있는 의궤 목록을 정리하고 설명을 붙인 해제집을 만드는 작업도 개시했다.
일반인에게 의궤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규장각 소장 의궤전’도 열었다. ‘조선왕조 의궤’는 그때부터 최근까지 10여 년 모은 자료를 집대성하고, 비전문가가 읽어도 흥미로운 글 솜씨로 시대별로 친절하게 설명한 책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불교쪽입니다. 조선은 무얼까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기록문화라고 봅니다. 바로 책입니다. 특히 조선의 통치 기록은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세합니다.”
한 교수는 그 조선의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3가지 유산으로 왕조실록과 지도, 그리고 의궤를 꼽았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 중요행사의 준비, 진행 절차, 규모 등을 기록한 책이다. 역사 기록물이지만 당장 궁 안팎에서 법도에 맞춰 치러야 하는 여러 행사의 ‘매뉴얼’을 제시한다는 실용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행사의 진행 과정을 날짜순으로 자세하게 쓰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하찮은 장인(匠人)까지 일일이 적고, 행사에 들인 비용과 재료 등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행사를 그 모습 그대로 그림으로 남겼다. 그래서 왕실의 장례 절차, 임금의 즉위식 풍경 등이 생생하다.
의궤의 기초적인 내용들과 그에 얽힌 정치사회 상황,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확인된 637종의 의궤 종합목록과 서지사항, 학술적인 연구를 돕는 풍부한 각주는 이 책을 가독성과 완성도를 겸비한 학술서로 만들어냈다.
‘조선왕조 의궤’는 평생 학술출판에 매진하다 지난 6월에 타계한 일지사 김성재 대표가 마지막으로 만든 책이어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한 교수는 1983년 ‘조선전기 사회경제 연구’(을유문화사 발행)로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을 받은 적이 있어, 드물게 두 차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사진=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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