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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누가 레밍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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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누가 레밍이 될 것인가

입력
2005.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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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유명한 현상의 하나가 레밍(lemming)의 집단자살이다. 노르웨이 등 북극권의 툰드라지대에 서식하는 이 작은 설치류는 주기적인 개체증식으로 먹이를 찾아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나그네쥐’로도 불린다. 레밍은 전체적인 개체수가 폭발수준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개체수가 급증하는데 어느 수준에 이르면 집단으로 물에 빠져 죽는다.

레밍의 생태가 정확히 밝혀지기 전 이들의 집단자살은 급하고 직선적인 성질 때문으로 알려졌다. 먹이를 찾아 헤매던 선두그룹이 벼랑에 이르러 아래로 떨어지면 뒤따르던 무리들도 먹이가 있는 줄 알고 함께 뛰어내리는 것으로 설명됐다. 그래서 레밍은 분별 없이 앞으로만 내닫는 자멸(自滅) 성향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되었다.

●미 車빅3 몰락 ‘집단자살’ 연상

그러나 레밍의 집단자살은 먹이인 풀들이 만들어내는 중화액과 레밍의 소화액의 상호작용에 따른 것으로 최근 규명됐다. 툰드라지대에서 자라는 풀들은 레밍이 나타나 풀을 뜯기 시작하면 레밍의 소화액을 중화 시키는 액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레밍의 개체가 적어 뜯기는 풀의 양이 적으면 풀들은 일정 시간 후 중화액 생산을 중단한다. 그러나 레밍이 계속 증가하면 풀들의 중화액 생산도 늘어나 레밍의 수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 중화액 생산이 계속 증가한다.

풀들이 만들어내는 중화액은 레밍의 소화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종의 독이다. 레밍은 풀을 뜯어먹어도 소화를 할 수 없고 체내에서는 갈수록 많은 소화액이 생산돼 체력 고갈상태에 이른다.

레밍은 풀을 많이 먹을수록 더욱 허기져서 인근 툰드라지대의 풀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호수나 바다의 가장자리에 도달하게 되는데 레밍은 물 건너에 있을지도 모를 먹이를 찾아 미친 듯이 바다나 호수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툰드라지대의 풀들이 만들어내는 중화액은 멸종 방지를 위한 일종의 자구행위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레밍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미국 자동차업계의 몰락을 보면 영락없이 레밍의 집단자살을 연상시킨다. 세계 1위의 자동차메이커인 GM이 오는 2008년까지 공장 및 서비스센터 12곳을 폐쇄하고 직원 3만명을 감원키로 한데 이어, 2위 업체인 포드도 앞으로 5년간 북미지역 공장 10곳을 폐쇄하고 직원 3만명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든 크라이슬러를 포함해 미국의 자존심인 자동차 빅3의 몰락은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100년간 미국경제를 이끌어온 빅3의 자동차산업 지배력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 10년 사이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유럽의 벤츠와 BMW, 한국의 현대ㆍ기아 등의 급부상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미국 빅3의 몰락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경쟁업체의 부상과 함께 내재적인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퇴직 종업원과 가족들의 의료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과도한 복지구조, 몸집 불리기에 급급했던 경영진의 안이한 태도 등으로 몰락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빅3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없진 않지만 곧 도요타가 GM을 누르고 세계 자동차시장 1위에 오르리라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승승장구 분야 자체검증 절실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우리의 자동차산업은 승승장구의 가도를 달려왔다. 후진국에서는 물론 주력시장에서도 무서운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반도체 IT조선 가전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잘 나가는 분야와 기업들이 미국의 자동차 빅3처럼 몰락의 길로 접어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견제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IT분야 최대수출국이 된 중국의 파상적인 추격은 가히 위협적이다.

현재 잘 나가고 있는 분야에서 우리가 과연 경쟁국들보다 원초기술이 앞서는가, 몰락을 예방할 정도로 내부 경영환경이 투명하고 효율적인가. 대답은 ‘글쎄’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내부에 누적된 독소에 마비되어 있지 않는지 냉철한 자가검증이 절실한 때다.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레밍처럼 자멸의 길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빅3가 보여주고 있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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