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관해서 어른들은 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온 눈은 아무 것도 아니야. 엄마 아빠가 어릴 때는 말이지.” 마치 그런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빠엄마가 어렸던 시절의 겨울엔 매일 눈만 내렸던 것 같다.
엊그제 호남지방에 내린 눈은 기상관측 이후 그 지역에 최고 많이 내린 눈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여전히 엄마아빠가 어렸을 때는 저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다고 말한다.
지난 3월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에 봄눈이 많이 내렸을 때 그때에도 기상관측 후 3월에 내린 눈으로는 최고 많이 내렸다는데도 어른들은 막무가내로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보다 더 많은 눈이 입학식 다음 날 내렸다고 말한다. 기상관측 기록 같은 것은 소용도 없다.
그러나 이해 못할 말도 아니다. 눈이야말로 어린 시절의 무릎높이가 어른이 된 다음 허리높이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 역시 이 다음 어른이 되면 자기 아이들에게 또 그렇게 말할 것이다. 비는 추억과 함께 하지 않지만, 눈은 늘 추억과 함께 하기 때문에 추억의 깊이까지 더해져 어린 시절의 것이 지금의 것보다 더 많게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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