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나온 뒤 ‘사람한테 당하기만 하는 도깨비가 안됐다’ ‘불쌍하다’는 이메일도 여러 통 받았습니다.” 그림책 작가 한병호(43)씨는 국내 일러스트 계에서 ‘도깨비 작가’로 통한다. 유별나게도 도깨비 그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거의 해마다 한 종 정도 도깨비 그림책을 낸다”는 그에게도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 ‘도깨비와 범벅 장수’는 좀 특별하다.
“그림책을 풀어가는 방법도 몰랐고 글을 해석하는 능력도 없었던” 그림작가 입문시절에 그린 같은 이름의 그림책을 완전히 새롭게 그려 다시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도깨비 그림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시인 모양으로 짐승 가죽 걸치고 방망이 든 도깨비가 지금은 치마저고리도 입고, 뿔도 하나였다 두 개였다 하고, 방망이 없이도 등장합니다.”
수묵채색으로 완성한 ‘도깨비와 범벅 장수’의 도깨비가 바로 그런 ‘한병호식 도깨비’다. 범벅장수가 호박범벅 가져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도깨비들은 키도, 생김도 제각각이지만 한결 같이 익살맞고 순진하다.
동시 작가이면서 요즘은 그림책 만드는 일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는 이상교(56)씨의 글은 이 그림책을 살아 있는 옛 이야기 책으로 만들었다.
‘시끌벅적 장날이야. 범벅장수는 이른 새벽, 장으로 나갔어. …『자, 따끈따끈 호박범벅 사세요! 혀에 살살 녹는 호박범벅이요!』” 이야기 듣듯이 흘러가는 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적인 운율이 있어 읽기에 그만이다.
도깨비 망방이로 뚝딱하면 만들 호박범벅을 범벅장수가 만들어오기만 고대하는 도깨비나, 도깨비 덕에 부자된 뒤에는 절대 범벅을 만들지 않는 범벅장수나 “가장 순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간직한” 캐릭터라는 그는 “둘이 밀고 당기면서 벌이는 유쾌한 상황을 글 맛을 곁들여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국민서관이 내는 ‘옛날 옛적에’ 그림책 시리즈물의 하나다. 같은 이름의 옛날 시리즈물을 새로 복원했는데, 여느 시리즈와 달리 고정된 판형이나 편집을 고집하지 않는다.
‘도깨비와 범벅 장수’가 대표적이다. ‘세로쓰기를 바탕으로 창제된 글자’인 한글의 멋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아예 책을 세로쓰기로 편집했다.
그래서 판형도 세로로 길쭉하며, 한지 느낌이 나도록 표지를 만들었고 본문 활자도 전통미와 역동성을 살려 썼다.
이상교씨는 “두고 볼수록 책에서 빛이 나더라”며 책을 디자인한 조혁준, 강영씨의 공을 높이 샀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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