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우리말로 번역된 과학 전공서적을 보면서 무슨 말인지 하도 이해가 안 가 ‘그래, 과학은 정말 어려운 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웬 걸요? 졸업하고 좀더 공부하면서 보니 그 말 그대로 번역만 했어도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책이더라고요.”
박병철(45) 대진대 초빙교수는 미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난 브라이언 그린의 책을 연이어 두 권 번역했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작인 ‘우주의 구조’와 그린의 전작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현대 이론 물리학 전반을 요즘 각광 받고 있는 초끈 이론(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으로 해석)과 관련 지어 설명한 책이다.
초끈 이론 분야의 연구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린은 “어려운 과학 이론을 일상과 비유해서 쉽게 설명하는 달인”으로 평가 받는다.
이미 세계 과학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저술가이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기존의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쪽이었지만 ‘우주의 구조’에는 저자의 생각이나 주장이 적잖게 반영되어 있어 번역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시간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대목은 잘 모르는 이야기라서 번역을 중단하고 그 분야를 공부한 뒤 다시 번역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그린이 자신의 주장을 사실인 듯 단정적으로 서술한 경향이 있어 ‘이런 것도 있다’는 식으로 약간 유연하게 바꿨는데 “그린이 알면 항의할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부쩍 과학책 전문 번역가들이 늘었지만, 따져보면 박 교수는 그 중에서 소수 그룹에 속한다.
해외 과학서 번역은 전문학자보다는 일정한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갖춘 번역가들 차지인데, 박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대 대학에서 초끈 이론 등을 가르치는 물리학자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에서야 다른 번역가에 모자랄 게 전혀 없는데다, 번역문장이 쉽고 명쾌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1991년 고려원에서 나온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를 시작으로 연구와 강의 틈틈이 번역하는 박 교수는 국내 과학서 출판 시장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청소년을 과학과 친해지도록 하겠다며 얄팍한 교양서만 줄줄이 나오는 건 잘못입니다. 제가 알기로 자연과학은 결코 쉬운 학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평생을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과학책을 읽고 그런 것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출판이 실은 중요합니다.”
그린이나 리처드 파인만의 책을 꾸준히 내는 승산 쪽 번역을 많이 한 것도 출판사와 그런 점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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