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법률에 근거해 대법원이 판결을 했다면 헌재는 이 판결을 취소할 수 있을까. 현행법은 ‘법원의 재판은 헌재의 심판대상이 아니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위헌 법률에 근거한 재판의 취소 여부를 둘러싸고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해묵은 갈등이 최근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승객의 가슴을 만진 죄로 지난달 24일 대법원에서 운전면허 취소가 확정된 택시기사 유모(36)씨는 최근 헌재에 “대법원 판결은 위헌 법률을 적용해 내려진 판결이므로 취소돼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지난달 24일 자동차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 운전면허를 취소하도록 한 도로교통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에 유씨에 대한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헌재 결정과 동시에 내려진 판결은 적용대상이 아니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헌재는 유씨의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헌재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위헌결정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내려진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판결 취소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설사 헌재가 판결 취소 결정을 하더라고 대법원 판결은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며 “그런 결정은 헌재의 입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비슷한 갈등은 90년대 중반부터 수 차례 있었다. 95년 헌재는 ‘실거래가 양도소득세’ 사건에서 소득세법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듬해 “단순 위헌과 달리 한정위헌 결정은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헌재 결정과 반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97년 ‘헌재 결정에 반하는 법원 판결은 무효’란 논리로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취소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이후에도 헌재 대신 대법원의 법률 해석을 따라 판결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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