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내륙 한가운데 지역은 동부나 서부의 도시 지역들과는 많이 다르다. 국제무대에서 걸치지 않는 일이 없는 미국이지만 그 쪽 사람들은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것들과는 떨어져 사는, 그저 ‘내륙인’들인 게 보통이다. 땅이 넓은 나라의 시골 사람들이라서 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접해보지 않으면 진짜 미국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외부와는 동떨어진 듯한 그 지역은 ‘중심부’ 정도의 뜻으로 알아들을 heart land로 불린다. 타지와는 다른 자기들의 세계와 가치관, 체질을 따로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온통 시끄러웠던 한 해
얼마 전 만난 한 방송사 경영인은 “한국이 마치 미국의 내륙 같다”고 했다. 국제적 활동가이기도 한 그는 “미국과도 일본과도, 또 중국과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후진국들과의 친교에 노력하는 것도 없다”며 지적한 말이다.
꼭 고립상태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외ㆍ동맹 관계의 방향이나 외교 성적에 대해 내린 나름의 평가이다. 기업 쪽에 있는 다른 인사는 “경제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외교는 불안하고, 사회는 온통 시끄럽기만 하다”고 정권에 대한 비슷한 불만을 말했다.
잘 되는 것은 없는 데 시끄럽기만 하다면 매우 불안정한 사회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어수선할까.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곳에 버텨야 할 중심이 있을 리 없다. 제 각각 따로 놀고 말이 엇갈리니 삿대질만 격해진다.
새삼 리더십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로 놀고 말이 엇갈리는 선봉은 역시 대통령과 여당이다. 서로 모르기는 외부도 그들도 마찬가지에 아랑곳 하지도 않는다.
며칠 전 대선 3주년 워크숍이 또 한번 이를 보여 주었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정치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고 집권 3년 동안 못한 일은 별로 없다는 게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지도자들의 말들이다. 지난 10월 재선거에서 참패하고 쏟아냈던 반성과 탄식에서 180도 달라진 말들이다.
연극의 독백도 관객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집권층의 이런 독백은 대상도 없다. 정치는 말이 수단이지만 독백으로 할 수는 없다. 그 때 반성이 진심인지, 이번 자화자찬이 진담인지, 아니면 때에 따라 이 말 저 말 하는 것인지 대국민 화법 치고는 3류 화법으로 들린다. 중심부에서 구심력을 발휘해야 할 측의 메시지가 듣거나 말거나 식으로 나오니 어수선함만 더 한다.
때로는 대통령의 말들을 정색을 하고 따지고 싶지 않다. 직무에 대한 것이라도 특유의 화법이 맥락을 벗어나거나 직무에 어울리지 않는 감성 표출 수준의 말들이 대개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이다. 그러나 마음엔 항상 뭔가가 걸린다. 대통령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가 여기에도 스며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한다면 대통령의 말이 대통령답게 먹히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제 청와대브리핑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즉흥적이다, 생각나는 대로 한다는 세간의 오해가 존재하지만 이는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즉흥적으로 보이는 발언조차 준비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렇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된다.
소통과 단절되고도 이를 느끼지 못하는 정권에서 미국의 내륙 지방과도 같은 인상을 받는다. 미국의 내륙이야 고유의 가치와 기질로 국가정체성의 한 축을 이루지만 정권의 고립과 단절은 권력의 이탈과 권위의 해체를 가져 왔다.
●집권층 소통 단절 걱정돼
교수신문이 2005년 한국을 풀이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선정한 것은 “올 한 해 우리는 불과 물처럼 상극이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반과 분열, 소란과 파괴에 시달린 한 해를 정말이지 돌이켜 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열흘 뒤인 내년이면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 별의 별 일을 다 겪더니 황우석 파동까지 덮친 마당인데, 지금부터 또 어떤 일이 생겨나고 있을지 각오를 단단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내년엔 어떤 사자성어가 기다리고 있을까.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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