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호남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에 고립된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밤을 새워야 했다. 일부 차량들은 도로 한복판에서 운전자에게 버림 받은 채 휑하니 비어 있었고, 차 안에 남은 운전자들은 끝없이 늘어선 앞 차들을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방송 뉴스에 귀를 기울이다 잠을 청했다.
지난 번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또 다시 눈 폭탄이 덮친 광주와 목포 등의 중심 도로는 기능이 거의 마비됐고,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도 대부분 끊겨 시민들은 22일 새벽까지 귀가전쟁을 벌여야 했다.
21일 오후 7시30분께 호남고속도로 장성 부근에 고립돼 있던 안모(38)씨는 “큰 눈이 올 때마다 이렇게 주차장으로 변하는데 고속도로는 무슨 놈의 고속도로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들(4)과 함께 친정 어머니 생일 잔치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발이 묶인 다른 운전자 임모(33ㆍ여)씨도 “비싼 통행료 받아서 어디에 쓰는지 감사라도 해야 할 일”이라며 흥분했다.
고속도로는 주차장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하루종일 소나기성 폭설이 쏟아진 호남고속도로에서는 일찌감치 차량들이 거북이 걸음을 시작했다.
게다가 이날 오전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백양사 휴게소 부근에서 트레일러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뒤따르던 차량 10여대가 잇따라 추돌하는 사고까지 일어나 이 일대 교통은 3시간 넘게 마비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날 낮 12시30분 백양사_곡성 구간의 차량 진입을 금지한 데 이어 오후 6시45분 통제구간을 호남고속도로 논산_남해고속도로 진월 212㎞ 구간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차량들이 오르막길에서 1~2대씩 멈춰 서기 시작하면서 호남고속도로에 차량 2,000여대, 남해고속도로에 차량 수백대가 갓길까지 빽빽이 들어차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도로공사는 이날 오후부터 부랴부랴 중앙분리대 3곳을 개방해 차량들의 우회를 유도했으나 제설차량조차 진입하기 힘들 정도로 차량들이 엉켜있는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서해안고속도로도 호남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와 비슷한 순서를 거치며 수백대의 차량이 고립돼 버렸다. 고속도로가 끊기면서 주변 국도와 지방도에서는 하루종일 차량들이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광주 목포 도심과 고갯길 등에는 차량들이 거의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해 도심을 빠져나가는 데만 1~2시간이 걸리는 등 밤 늦게까지 정체가 계속됐다.
특히 택시들도 일찌감치 운행을 중단해 상당수 시민이 아예 귀가를 포기한 채 직장 인근 여관 등에서 묵었다. 또 이면도로는 손수 운전자들이 놓고 간 차량들로 가득했다.
전남대는 이날 폭설로 학생들의 등교가 어렵다고 판단, 22일 하루 동계 계절학기 강좌를 휴강하기로 했다. 전남대 관계자는 “폭설로 대학 강의가 중단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며 “22일 이후 강의 진행 여부는 기상 상황을 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재산ㆍ인명피해 속출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설이 쏟아진 광주시청 앞에서는 10월 7억5,000여만원을 들여 설치한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상징조형물의 천이 찢어졌다.
전남 함평군 함평읍에서는 임시 버스터미널의 조립식 건물 지붕이 붕괴됐으며, 전북 고창군 대산면에서는 한 농가의 축사가 붕괴돼 젖소 7마리가 죽었다.
또 북제주군 현경면 고산리에 순간 최대 풍속 38㎙가 넘는 강풍이 불면서 이 마을 이모(여)씨 집 옥상의 철제 컨테이너가 집 옆으로 날리면서 파손됐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에서는 농정기술센터 육묘농장의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면서 제설작업을 하던 공무원 이승희(48)씨가 철제 구조물에 깔려 숨졌다.
또 이날 오전 초속 17㎙가 넘는 강풍이 분 전남 진도군 지산면에서도 정모씨 집이 산산조각 나면서 인근 밭에서 일하던 주민이 머리를 다쳤다.
이날 오후 4시20분께 전남 신안군 대흑산도 북쪽 20마일 해상에서 제주 선적 2만7,076톤급 컨테이너 운반선 시노코호(선원 24명 탑승)가 원인미상의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 당시 해상에는 10㎙ 높이의 파도가 일고 있었기 때문에 침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4시20분께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도계리 도계마을 한 축사 지붕 위에서 제설작업을 하던 경기경찰청 기동 13중대 소속 김모(21) 일경이 지붕 일부가 무너지면서 5㎙ 아래로 추락했다.
앞서 오후 4시께 같은 마을 다른 축사에서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던 백모(20) 일경이 지붕에 구멍이 뚫리는 바람에 5㎙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김 일경은 목 부분을, 백 일경은 엉덩이뼈와 허리 등을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이날 오후 7시께 서울경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도계마을에서는 경기경찰청 소속 의경 80여명이 제설 및 응급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은 부상자들이 눈이 쌓여 약해진 슬레이트 지붕을 밟고 올라갔다가 지붕이 무너지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김종구 기자 sori@hk.co.kr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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