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하면 대부분 강렬한 빨간색과 산뜻한 초록색, 우아하면서 고급스러운 황금색 장식만 생각한다. 이 상투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보다 독특한 느낌의 크리스마스 와인상을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갤러리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와 설 식탁을 위한 공예전’.
도자기 자체의 묵중함에, 도예가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긴 루돌프 사슴 소품들이 인상적이다. 사슴의 눈ㆍ코ㆍ입만 클로즈 업 한 순백색의 물컵, 사슴이 사람처럼 앉아 있는 장식품, 사슴이 매달린 촛대 등. 표정도 각기 다른 게 더욱 재미를 자아낸다. 색깔도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다. 이 정도면 그리 부담스럽지도 않게, 나름대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낼 수가 있다.
사슴 뿔 모양이 다채로워 루돌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는 류천욱(31)씨. 그가 제안하는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와인 상차림을 슬쩍 엿본다.
이 상차림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기본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붉은색, 초록색, 황금색을 최대한 적게 쓰는 것이 포인트. 중요한 몇 곳에만 강렬한 색을 써도 분위기를 살리기에는 충분하다는 것.
일단 식탁보는 붉은 색이나 진한 녹색으로 준비해 보자. 옷감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쓰면 되지만 폴리에스테르천이 비용은 적게 든다. 식탁 길이보다 35~45cm를 더해 맞추면 가장 적당하다. 이 정도가 사람이 앉았을 때도 편하다.
식탁보를 깐 후 취향에 따라 장식을 하자. 가장 필수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초. 분위기를 내는 데 이보다 좋은 소품이 없다.
초를 여러 개 모아 켜도 예쁘지만 루돌프가 앙증맞게 달린 촛대에 작은 초를 하나만 켜도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초 색깔은 취향에 따라 고르되 식탁보와는 구별되는 색이 좋겠다. 초대할 사람의 이름을 적은 카드나 쿠키를 구워 올려 놓는 것도 분위기를 내는 데 한몫 할 듯. 장식으로도 좋지만, 초대 받은 사람이 진짜로 대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메시지가 적힌 케익도 놓는 센스도 잊지 말자. 요즘은 1만원 미만의 작고 예쁜 케익도 손쉽게 살수 있으니.
간단한 장식이 끝났으면 본격적인 테이블 세팅을 하자. 와인상인 만큼 치즈와 간단한 스넥, 과일 정도를 놓을 그릇만 준비하면 된다. 큰 접시에 이것들을 한꺼번에 놓으려면 작은 개인 접시정도만 필요할 뿐. 금색 굵은 줄이 들어간 도자기가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접시를 세트로 세팅하면 깔끔한 느낌을 내지만 꼭 세트여야 하는 건 아니다. 비슷한 느낌의 그릇들을 모아 놓아도 나름의 멋을 풍긴다.
여기에 와인과 둥근 와인 잔을 놓자. 금장식이 살짝 들어간 것도 괜찮다. 이 밖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하는 작은 도예품이나 루돌프 장식품을 주변에 놓기만 해도 그럴듯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성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열리며 류천욱 외 황종례, 김숙란, 김상만, 허상욱, 김규태, 김영재씨가 참여했다.(02)3673-0110.
▲ 류천욱 인터뷰 "루돌프 표정은 내 마음의 얼굴이죠"
루돌프에 얽힌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사슴 작업에만 치중해 온 류천욱씨의 대답은 의외로 '아니오'이다. 토끼, 여우 작업을 해 오던 그는 동물을 의인화하기 쉬워 시작했을 뿐이다.
특히 사슴은 그 중 가장 매력 있는 동물이었다. 다리도 길고 뿔도 커서 작업하기가 제일 까다로운 데도 자꾸 끌렸던 것은 왜일까.
"어릴 때 목수이셨던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때마다 직접 만들어주신 나무 인형들, 그 따뜻한 기억이 아마 제 동물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가 만든 사슴은 연령대도 다양하다. 액세서리함에 달린 사슴은 유순한 꼬마이고 사람처럼 긴 다리와 팔을 가진 장식품 사슴은 세상에 찌든 어른이다. 이들은 뿔만 화려할 뿐 표정은 어둡다. 뿔을 만들면서, 표정을 만들면서 그의 마음속 생각도 거기에 개입되는 까닭이다. 마음이 힘들 땐 사슴의 표정도 어둡고 기분이 좋을 땐 그의 얼굴도 밝아진다.
작업을 하다 보니 루돌프라는 주제가 크리스마스와도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여러 가지 소품을 만들고, 붉은 색과 초록색도 입혔다. 그가 만든 깨끗하고 부드러운 사슴 이미지에서 결코 화려하지 않는 소박함과 잔잔함이 따스하게 전해졌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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