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아, 그만 자고 선물 받아. 산타할아버지가 왔단 말야.”
20일 오전 11시. 시각장애 뇌성마비 정신지체 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중복장애아 14명의 보금자리인 서울 종로구 체부동 라파엘의 집. 산타차림으로 장애아들에게 선물꾸러미를 돌리던 삼육재활학교 황지형(41) 교사는 “티없이 자라는 꼬마들이 너무 귀엽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여느 산타 할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몸이다. 때문에 그는 이날도 전동식 휠체어에 탄 채 팔을 파르르 떨 정도로 온몸에 힘을 줘가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줬다.
하지만 힘겨움도 잠시, 보육 교사에게 안긴 채 선물을 한아름 받은 아이들이 환한 웃음으로 답하자 황씨도 껄껄대고 웃었다. “아이들이 장애 때문에 말은 못하지만 얼굴만 봐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요. 웃는 모습이 참 천사 같지 않아요.”
제 한몸 가누기도 힘든 그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온라인을 통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SK커뮤니케이션즈 봉사동호회 ‘하늘샘’이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 중이던 ‘하늘샘’에 자신보다 더 심한 장애를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산타가 돼 주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 놓았고, 동호회는 점퍼 장갑 모자 등 푸짐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해 동참해 줬다.
선물 전달이 끝나고 동호회원들이 장애아들을 품에 안고 점심을 먹이자 황씨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말을 꺼냈다. “나도 저 맘 땐 인기가 좋아서 누나들이 서로 밥을 먹이려고 했어요. 꼬마들이 나처럼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라파엘의 집에는 사회 각계 봉사단체뿐만 아니라 매달 5,000원의 후원금을 보내는 배추행상 등 익명의 후원자들이 많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다 쓰러져 가는 시설을 보고는 사재를 털어 지금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오옥자(54) 원장은 “요즘 들어 온정의 손길이 뜸해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지만 아직은 희망을 주는 이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02)739-7020
글ㆍ사진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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