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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씨네다이어리/ '스태프 밥상'도 이젠 차려줄 때

입력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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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몇 년 전 서른 살을 눈 앞에 두고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중학생 때부터 품어온 영화감독의 꿈을 더 늦기 전에 실현하고 싶어서 였다. 막일에 가까운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여자 배우의 햄버거 심부름을 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지만, 차비와 용돈 수준에 불과한 쥐꼬리 임금에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안정된 생활을 과감히 포기하고 꿈을 선택한 그의 용기를 친구들은 만용이라 평가하면서도 내심 부러워 했다. 그러나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고투(苦鬪)해온 그의 어깨가 요즘 유난히 쳐져 보인다. 돈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그의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개선을 목표로 삼은 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이 300여명의 조합원으로 15일 출범했다. 합법적인 노동조합이 아니고서는 노동의 온당한 대가를 받아낼 수 없다는 스태프들의 절박한 심정이 낳은 결과물이다.

한국영화가 3년 연속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며 호황을 구가하고 산업화의 급류를 타고 있으나 스태프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여전히 짙다. 임금을 떼먹는 악덕 제작자들이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영화에 대한 스태프의 꿈을 볼모로 한 저임금 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초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든 부당한 현실에 놓여 있으면서도 영화노조 집행부는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아직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제작자들의 선의를 아직 믿고 있고 자칫 집단행동이 영화계의 공멸을 부를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들의 ‘욕심’은 소박하다. 스태프의 ‘막내’가 안정적으로 6개월에 20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기를 원한다.

최근 한국영화의 눈부신 약진은 우수 인력의 유입과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에게 꿈을 먹으며 영화 현장을 지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제는 영화계의 공생을 위해 제작자들이 스태프들의 외침에 응답할 차례다.

배우 황정민은 한 영화제 수상 소감으로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다”며 공을 돌렸다. 관객 앞에 맛있는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 내놓는 숨은 요리사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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