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13년 유럽연합(EU) 예산안을 놓고 신경전을 폈던 25개 회원국 정상들이 17일 새벽 극적으로 합의를 이루면서 EU호는 좌초될 위기를 피했다. 그러나 협상에 참여했던 주요 정치인의 이해 득실은 갈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카지미에르즈 마르친키에비치 폴란드 총리는 지난 달 나란히 총리에 취임한 새내기 총리로 첫번째 외교 무대였던 EU 정상회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메르켈 총리에게 EU 무대는 국제 사회에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확실하게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예산 분담금 환급과 농업 보조금 축소 문제를 놓고 대치하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중간에서 “협상 타결이 없으면 EU 전체가 무너진다”고 설득, 양쪽의 양보를 얻어냈다.
보조금 축소에 대한 동유럽 회원국들의 반발은 “독일이 1억 유로를 내겠다”는 공세로 무마시켰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메르켈이 미스 유럽으로 떠올랐다”며 찬사를 보냈다.
마르친키에비치 총리는 실속을 챙겼다. 정상회의 시작 전만 해도 서유럽 회원국 사이에서는 “동유럽 회원국에 대한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마르친키에비치 총리는 이에 맞서 “동유럽 회원국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EU 전체의 미래는 어둡다”는 논리로 버텼고 당초보다 40억 유로가 더 많은 보조금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순회 의장국 의장으로 회의를 이끌었던 블레어 총리는 나라 안팎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회의에서 “영국의 환급금 105억 유로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그는 나라 밖에서 ‘결단의 지도자’로 평가 받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는 “블레어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협상 타결이었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반면 영국 내에서는 “프랑스는 한 발 양보도 없었는데 왜 우리만 환급금 혜택을 포기 해야 하냐”는 비판 목소리가 높아져 그에게 국내 여론 무마라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겉으론 크게 잃은 것이 없는 듯 하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들은 그가 농업 보조금 축소 논의를 2008~2009년에 다시 하기로 한 데 대해 “2007년 대선에서 뽑힐 다음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긴 꼼수를 썼다”고 비판했다.
또 메르켈의 활약으로 이뤄 낸 협상 결과를 두고 그는 “프랑스와 독일이 협조를 잘 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무임 승차하려고 한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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