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대현의 이런문화 저런생각] 영화 같은 세상 꿈꾸지는 마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대현의 이런문화 저런생각] 영화 같은 세상 꿈꾸지는 마라?

입력
2005.12.20 00:00
0 0

킹콩이 다시 돌아왔다. 1933년, 1976년에 이어 세번째이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이 만든 2005년의 ‘킹콩’은 더욱 놀랍다. 우선 크기부터가 다르다. 키 7.6m에 몸무게 6.3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정교함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모션 캡쳐(Motion capture)를 결합시킨 킹콩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표정과 행동이 자연스럽다.

그 킹콩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창조해낸 거대한 공룡들과 싸운다. 그것도 1930년대에. 정말 어이없는 설정이지만 영화적 상상력은 지구의 보편적인 역사를 초월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왜나하면 영화이기 때문에.

앞서 마이클 베이 감독은 ‘아일랜드’에서 한층 생생한 복제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이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질병에 대비, 필요한 장기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와는 물론 생각까지 똑 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놓는다.

피부 한 조각, 간단한 뇌 촬영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미래 인간복제의 경고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인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불로장생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온갖 과학적 상상력을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펼쳐놓는다. 더욱 더 현실감 있는 상상력을 위해 첨단 과학을 이용한다. 때론 영화 속 상상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영화가 현실을 자극해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이루게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SF(Science Fiction)영화에 매료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SF영화는 과학(사실)이 아니라 허구이다. 최첨단 과학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과학적 판타지일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공장은 이 허구를 위해 긴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고 감독은 그것을 발판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그럴 듯하게 펼쳐놓는다. ‘킹콩’도 1년 6개월의 제작기간과 무려 2억700만 달러라는 돈이 들어갔다. 할리우드가 이런 투자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오락’으로서 SF영화가 경쟁력이 크기 때문이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복제개 스피너와 국내 최초 체세포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키자 전국민은 열광했다. 언론은 그를 주저 없이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만들었으며, 초등학생까지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21세기 한국은 그의 연구결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부유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정부와 기업도 덩달아 그를 ‘국보’라고 추켜세우면서 엄청난 돈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애자들은 금방이라도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는 꿈에 젖었다.

그러나 황 교수는 과학자이지 SF영화감독이 아니었다. 줄기세포허브 역시 할리우드 영화공장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황 교수가 ‘킹콩’을 만들 듯, 당장 배아복제줄기세포를 만들 것이란 환상을 가졌고, 어쩌면 그는 그 환상을 외면할 수 없어 스스로 과학자로서의 길을 일탈했는지 모른다. 지금의 허탈과 부끄러움은 결국 과학과 SF를 혼동한, 영화 같은 세상을 꿈 꾼 우리 모두의 죄일 수도 있다.

이대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