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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과학과 언론과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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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과학과 언론과 여론

입력
2005.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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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와 줄기세포 논란에 온 나라가 휘말린 최근 영국에서는 과학과 언론과 여론이 얽힌 MMR 백신 유해성 논란이 8년 만에 과학적 결말에 이르렀다. 홍역ㆍ볼거리ㆍ풍진 예방백신인 MMR 접종이 어린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추정이 근거 없다고 옥스퍼드 대학 코크레인(Cochrane) 연구소가 최종 결론 내린 것이다.

‘과학적 결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 결론이 의학계의 일치된 견해를 확인한 것임에도 언론과 여론은 다시 찬반이 갈려 적대적 논쟁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여론 부딪친 MMR 논란

국제적 파문을 불렀던 MMR 유해성 논란은 과학적 견해와, 언론을 포함한 사회 여론 사이의 메우기 힘든 간극과 그 해악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황 교수 논란과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우리 사회도 참고할 만하다.

논란의 발단은 1998년 저명한 영국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발표한 런던대 교수 웨이크필드의 논문이다. 다른 의사 12명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연구대상 자폐증 어린이 12명 가운데 8명이 MMR 접종 직후 자폐증세를 처음 보였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백신과의 연관성이 입증되지는 않았으나 일단 3가지 백신을 1년 간격으로 따로 접종, 부작용을 줄일 것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즉각 MMR 백신 공포를 불러 접종율을 크게 떨어뜨렸다. 당황한 의료당국은 전문가 검토를 거쳐 논문 주장이 근거 없다며 MMR 접종을 계속했다. 시차를 둔 분리접종은 질병 감염위험을 높인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선정적 언론을 중심으로 논란은 가열됐고, 부모의 접종 선택권을 빼앗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의 비난이 거셌다. 이 와중에 블레어 총리가 늦둥이 아들의 MMR 접종 여부를 얼버무려 불신을 부추겼다.

그 사이 영국과 미국의 여러 연구기관은 MMR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어 선데이 타임스는 문제의 자폐증 어린이 12명은 그 부모들의 백신 제조회사 상대 소송을 유도하던 변호사가 모았으며, 웨이크필드가 소송지원기금에서 연구비를 받은 사실을 폭로했다.

또 BBC 채널 4 TV는 웨이크필드가 논문 발표직전 홍역 단일백신 특허를 신청한 사실을 추적 보도했다. 결국 란셋은 치명적 결함이 있는 논문 게재를 사과했으며, 공동저자 12명은 논문 참여를 철회했다. 그러나 웨이크필드는 지금껏 정당성을 주장하며 미국 민간연구기관에서 버티고 있다.

영국 언론은 MMR 논란의 교훈을 여러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일부 탐사보도가 진상규명에 기여했으나 언론이 과학계의 검증결과를 충실히 따르지 않고 MMR 공포를 조장, 어린이 건강을 위협한 과오를 반성하는 점이다.

특히 자폐증 어린이 부모들에게 MMR 접종을 시킨 데 대한 근거 없는 죄책감과, 손해배상에 대한 부질없는 기대를 안긴 잘못이 크다는 것이다.

여론과 사회가 자폐증 어린이 지원 등보다 MMR 유해성 규명에 관심 쏟게 한 부작용도 지적된다. 과학적 진실 논란 자체보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자폐증 어린이 가족 등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자세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진실이 중요한 이유 바로 알아야

황 교수 논란이 난자확보의 윤리성에서 연구성과 자체의 진위 논란으로 커지면서 언론과 여론 등 우리 사회는 오로지 진실이 무엇인가에 매달리고 있다. 언뜻 당연하지만 왜 진실이 중요한가에 대한 인식은 엇갈리거나 모호한 느낌이다. 그걸 따지는 게 우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언 윌머트 등 줄기세포 연구의 권위자 8명은 논문 검증을 촉구한 공개 서한에서, 줄기세포 연구와 성과 발표에 고도의 도덕성과 절제가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장애 환자와 가족 들이 엄청난 기대(great hopes)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비춰 황 교수의 과학적 비행(非行)을 밝히는 일 자체에 집착하거나, 반대로 국가적 손실 등을 먼저 헤아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맹목적이고 빗나간 논쟁에서 일찍 벗어나는 길이라고 본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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