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목인갤러리에서 열리는 중견 서양화가 신봉자(52)씨의 네번 째 개인전 ‘그 길은 아름답다’전에는 한국적 정서를 따뜻한 색에 담아낸 신씨의 작품 외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보이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 함께 걸린다. 신씨의 어머니 박신득(85)씨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그린 그림이니, ‘모녀 회화전’인 셈이다.
신씨가 서른 살이 되던 1983년, 갓 환갑을 지난 어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고비는 넘겼지만 어머니의 오른쪽 반신은 기능을 잃었다. 다른 형제들은 가정을 이뤘거나 유학 중이어서 어머니 병간호는 고교 미술교사였던 둘째 딸 신씨의 몫이 됐다. 작업량과 수업량을 바짝 줄이고 병 수발에 매달렸다.
“제가 천사 같은 딸은 아니에요. 힘들 땐 어머니한테 신경질도, 투정도 부렸어요. 어머니가 워낙 천성이 고우신 분이라 지금껏 잘 견디신 것이지요. 아프신 와중에도 바깥공기를 마시게 해드리면 ‘햇빛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실 정도니까요.”
95년 척수 종양제거 후 재활치료 과정의 하나로 어머니에게 일기 쓰기를 권유했다. “글 옆에 항상 작은 그림을 그리시는 거에요. 너무나 앙증맞게, 소녀처럼요. 그래서 스케치북을 사다 드렸어요.” 어머니의 그림 그리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매일 응급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됐습니다. 5년 전부터 그게 모녀전 계획으로 구체화됐지요.”
지난해부터는 증세가 더 악화해 어머니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됐다. 얼마 전에는 치매까지 겹쳤다. 전시회 얘기에 어머니는 “응, 좋아”하며 슬쩍 미소를 지으셨는데, 진짜로 알아들으신 건지도 알 수 없다. 신씨는 그래도 오랫동안 꿈꿔온 일을 하게 돼 기쁘다. 그의 작업노트에는 ‘어머니의 길은 나의 길이 되고 나의 그림이 되고 다시 어머니의 그림이 되었다’ 라고 적혀있다.
“결혼이요? 원래 시집갈 데도 없었는데 어머니 때문에 좋은 이유라도 생긴 거지요. 살면서 감사하는 두 가지는 어머니와 모녀관계가 된 것과 그림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7일까지 계속되는 전시에는 모녀의 작품 각 스무 점씩이 나란히 내걸린다. (02)722-5055
조윤정 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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