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라 할까, 지난주의 홍콩은 반세계화 운동의 세계화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의 통상 관료가 모인 회의장 주변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수천 명의 WTO 반대 시위대가 모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범세계적 정보망이 순식간에 접속되는 세계화한 지구촌에 살고 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대외 의존도가 70% 수준이면서도, 세계 50위권에서 맴도는 1인당 국민소득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세계화는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하겠다.
불행하게도 인체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화의 문턱에서 만신창이가 됐지만, 전자제품을 포함한 각종 상품은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불리는 와이브로 기술은 물론, 김치 인삼 등과 함께 ‘겨울연가’에서 시작된 토종의 한류도 아시아를 넘어 세계화 조류에 합류할 추세다.
막판에 오점을 남기기는 했지만, 이번 홍콩에서의 우리 ‘시위 문화’도 세계적 경쟁력을 과시했다. 삼보일배, 해상 시위, 오리걸음 시위는 매스컴의 주목을 독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우리 쌀은 국제경쟁력이 달리는 걸까. 돌이켜보면 그동안 가장 발전한 국내 산업 분야가 농업이라 하겠다. 한국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전 국민의 4분의 3이 넘던 농업 인구가 15분의 1 수준까지 줄었지만, 보릿고개가 옛 추억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식량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해졌다.
지금은 쌀도 남아돈다. 그럼에도 수요공급의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남아도는 쌀이 수입 쌀에 비해 아주 비싼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의 과보호정책 탓에 국제 경쟁력이 배양되지 못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국민의 93% 이상이 7% 미만을 위한 정부 보조금(세금)을 충당하고 비싼 쌀을 구매해야 하는 이중적 희생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나? 무역 자유화 시대에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한 미곡의 정부 비축량 증가는 여전히 유의적인가? 모든 경제활동에서 가장 비경제적인 요소의 하나가 바로 재고 누적이라는 점을 간과해도 되나?
더는 경쟁력 없는 쌀 농사에 연연하지 말고 합리적 정책을 수립할 때다. 미작 농민도 세계화 반대 시위에 정력을 낭비하기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농지의 용도 변경 요구는 어떤가? 지금 국내에서 공급이 가장 달리는 것의 하나인 골프장 건설에 나설 수도 있지 않을까?
조영일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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