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식품안전대책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기생충알 김치 파동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을 때만 해도 “이번 만큼은 먹거리 불안을 없애겠다”고 다짐했지만 대책의 뼈대인 식품안전관리 업무 일원화를 놓고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소나기는 피했으니 쉬면서 밥그릇이나 챙기겠다’는 각 부처의 속마음도 작용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지난 달 18일 당정협의회에서 식품안전관리를 위한 행정체계 개편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12월1일까지 정부가 단일 의견을 만들지 못하면 여당이 결정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단일안이 나오기는커녕 조율을 위한 부처간 회의 일정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식품안전 행정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관계 부처가 동의하고 있다.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로 나뉘어져 있다 보니 사고가 터지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고, 체계적인 관리도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국(FDA), 영국 식품기준청(FSA) 등의 예에서 보듯 여타 선진국도 식품행정 일원화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문제는 누가 이를 맡느냐를 놓고 보건복지부와 농림부 등 각 부처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부처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할 총리실은 별도의 기구를 만들자고 나섰다.
복지부는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생산자의 입장을 고려한 관리 체계로는 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을 맞출 수 없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복지부는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 하에 단계별로 일관성 있는 관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소비자의 손에 직접 닿는 단계 뿐 아니라 국내ㆍ외 생산 및 출하 단계에 대해 사전 안전성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능력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인력과 예산 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식품안전관리 업무가 식약청으로 통합되면 기본적 인프라가 대폭 확대될 수 밖에 없고, 이에 걸맞는 업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생산을 담당하는 부처가 안전관리까지 책임지는 게 맞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농림부 아래에 식품안전청을 새로 만들자고 제안한 상태다.
농림부는 ‘식품’을 넣어 부처 이름을 농업식품농촌부 등으로 바꿀 방침을 밝힐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업무 영역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농림부로서는 부처의 사활을 걸고 이 문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총리실은 별도의 독립 기구인 식품안전처를 두자는 입장이다. 복지부와 식약청,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의 관련 조직을 이 곳으로 옮긴다는 생각이다. 식약청의 의약품 조직은 복지부 소속의 본부로 재편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급격한 개편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각 부처의 기능은 그대로 두되 총리실 아래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부처 이기주의가 짙게 배인 각부각색(各部各色)의 주장 탓에 국민 식탁에서 불안감이 사라질 날이 자꾸만 늦춰지고 있다.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