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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친구와 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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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친구와 프렌드

입력
200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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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생각의 관계에 대한 이론 중의 하나가 ‘워프_사피르 가설’이다. 약 6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가설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혼자서 현실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며, 표현을 위해 사회에서 사용하는 공용어에 매달려 산다. 사람들이 언어와 관계없이 현실에 대응한다는 것은 큰 환상이다.

‘현실세계’라는 개념은 한 그룹의 무의식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언어를 서로 비교해 보면 완전히 똑같은 사회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사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단순히 이름만 다른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은 우리 사회의 언어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선입견이나 해석들이다.”

이 가설은 아직까지 가설에 불과하지만 언어가 생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박쥐’라는 단어는 ‘쥐’라는 말이 들어 있기 때문에 쥐와 관계가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영어의 ‘bat’를 보면 쥐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고, 어원을 살펴보면 고 스칸디나비아어의 ‘leðrblaka (가죽 날개를 치는 것이라는 뜻)’에서 조금씩 바뀌어 현재의 모습이 됐다.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이런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보통 나이를 확인하지만, 캐나다에선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알게 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나이를 안 물어본 경우도 많다.

사실 ‘친구’라는 단어조차 영어에는 없다. 학원에서 일하는 친구의 경험에 의하면 어느날 초등학생들에게 우정에 대해 설명을 하던 중 “너희들은 다 ‘프렌드’이니 사이 좋게 지내야지?”라고 했단다. 그러자 한 어린이가 화가 나서 “선생님, 저는 7살, 얘는 6살이니 우리는 프렌드가 아니에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프렌드’를 ‘친구’라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언어라는 것은 단순히 가장 필요한 뜻만 전하기 위해, 혹은 현실을 그대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천 마디의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속담은 언어란 원래 어느 정도 모호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한 요즘에는 현실을 훨씬 더 잘 설명하는 인공언어가 많이 있어 이런 어려움과 불편을 덜어준다. 훌륭한 언어는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보다 대상에 대해 더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있고 이용자가 말을 하기 전에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언어이다.

데이비드 맥클라우드· 캐나다인· 프리랜서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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