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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책 "선거 때면 종이 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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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책 "선거 때면 종이 공해"

입력
200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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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수도권 구청장에 도전하려는 K씨는 요즘 여의도의 한 출판기획사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출마 홍보를 위한 자서전을 낼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대필작가 앞에서 옛날 얘기하고 질문에 답하는 게 전부다. K씨는 “일단 800만원을 내놓았는데 내년 1월이면 근사한 출판기념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경북지역 군수로 출마하려는 토박이 J씨는 학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이런 고민을 주변에 토로하자 “근사한 책을 내라”는 조언을 받았다. “제가 어떻게 책을…” 이라고 하자 돌아온 답이 이랬다. “대신 쓰는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말라. 2시간이면 만들어 줄 수 있다.”

매번 선거 때면 이런 책이 쏟아진다. 자서전에서부터 지역, 나라가 나아가야 할 비전, 각종 정책을 담은 책까지. 그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공식 선거운동기간 전 출판기념회가 유일한 합법적 선거운동 수단이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예외없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진 것도 그래서다.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는 내년 3월2일 이전까지 정치인들의 출판 러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미지와 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정치인들의 책은 ‘종이 공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경기도 한 지역구에는 출마 후보의 자서전 3만5,000부가 무더기로 살포됐다. 물론 한달 만에 급조된 책이었다. 당시 후보 진영 관계자는 “아이들이 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고, 쌓아 놓고 따먹기 놀이를 했다”고 말했다. 책 살포는 선거법상 기부행위지만 선관위가 일일이 단속하기 힘들다. “정치권 만큼 책이 대접을 못 받는 곳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인들이 책을 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저명한 정치인은 인세 계약을 하고 정상적인 출판을 한다. 어느 정도 팔릴 것이란 계산이 나오는 경우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책을 낸 한나라당 홍준표, 박진 의원은 이 경우다. 두 의원이 낸 책은 출판기념회 한번으로 손익 분기점인 3,000부를 넘겼다. 출판사는 출판기념회 개최 비용은 물론 제작비용까지 뽑았다. 의원들은 돈 안내고 홍보한데다 이후 판매량에 따라 10%의 인세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소수다.

역시 광역단체장에 출마하는 A의원은 판매에 자신이 없어 미리 출판비용조로 권당 3,000원을 지불하고 1만권을 찍었다. 이후 팔리는 만큼 출판사로부터 다시 돈을 가져오는 식이다.

대개의 경우 자비(自費) 출판이다.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미리 현찰을 지불하고 일정 분량을 찍어 지역구에 뿌린다. 출판사에 따르면 평균 수준의 지질을 가진 300쪽짜리 책 1,000권을 출판하려면 600만원 정도가 든다. 물론 대필료, 출판기념회비는 따로다.

이처럼 정치인을 필자로 하는 책은 상당수가 대필이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되는 책은 더욱 그렇다. 이 경우 소규모 출판기획사, 정치기획사가 담당한다. 여의도에만 수십개 기획사가 산재, 지방선거 특수에 대비하고 있다. 한 정치기획사 관계자는 “후보의 출마지역, 경력 등을 고려해 원하는 내용을 맞춰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요즘 출판시장이 어렵다 보니 큰 출판사의 경우도 정치인들의 출판 제의를 마다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책들이라 솔직히 돈 아깝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토로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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