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패션과 예술의 거리로 꼽히는 ‘소호’(SOHO).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이 거리에 한국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의 화장품 ‘아모레퍼시픽’ (AmorePacific)이 둥지를 틀었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주로 30~40대 백인 직장 여성들로 이들의 한국산 화장품 사랑은 각별했다. 일본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도 유럽의 명품 화장품에 밀려 철수를 하는 뉴욕 한복판에서 우리 화장품이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은 뭘까. 그것은 바로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꾸준한 연구개발(R&D)이 있었기 때문이다.
300여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하고 있는 태평양 기술연구원은 화장품연구소, 피부과학연구소, 의학건강연구소 등 분야별로 전문화돼 있다. 또 연구경영실과 학술개발실, 기술전략팀을 따로 둬 이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여성 가운데 50% 정도가 사용하고 있는 미백화장품의 개발은 물론, 자외선차단제, 주름개선 화장품 등 경쟁 우위에 있는 부문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회사는 매년 매출액의 3%를 연구개발비로 지원하고 있다.
1954년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설립했던 태평양은 설화수, 아이오페, 라네즈 등 국산 화장품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키워냈다. 최근 주력하고 있는 것은 그 동안 해외의존도가 높았던 화장품 소재의 개발. 천연물 추출, 미생물을 이용한 피부투과, 생리활성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개발한 소재들은 수입 대체 효과를 통해 외화 유출을 막고,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장품도 한라산 녹차 성분과 홍삼을 함유한 물로 이 연구원이 자체 개발한 ‘한라 그린 익스피어리언스’ 제품이다.
최근 연구원은 화장품 뿐 아니라 의약품, 식품 분야의 연구로까지 연구범위를 넓히고 있다. 제약 부문에서는 ‘비타민E 아세테이트의 나노 에멀전을 응용한 구강 점막 흡수 증진 기술’로 2002년 국산 신기술 인증(KT마크)을 획득한 데 이어, 독일 파마사와 공동으로 차세대 진통제 ‘PAC20030’을 개발하고 기술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식품 부문에서는 ‘설록차’를 기반으로 한 건강식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연구원 산하 나노텍연구팀은 2000년 업계 최초로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됐다. 현재 이 연구팀은 5년간 3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나노 구조를 이용한 생리활성 물질의 선택적 피부흡수 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의 목표는 피부 내에서 특정한 효과를 내는 생리활성물질들을 원하는 부위에 선택적으로 흡수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연구가 완성되면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기능성 화장품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연구원이 나아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태평양의 목표는 화장품 분야에서 10개의 메가 브랜드를 육성해 세계 10위권 화장품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 건강미용식품 분야에서는 5개의 메가 브랜드를 육성해 국내 리딩기업이 되는 것이다.
태평양 서경배 사장은 “화장품 업계도 바이오기술(BT)과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의 접목으로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미래에 어떤 화장품이 각광을 받게 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태평양은 향후 10년간 연구원의 규모를 2배로 늘려 연구역량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해외 유명 연구소와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힘써 그룹 성장의 견인차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