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유서는 강씨가 대신 쓴 것이 아니라 분신자살한 김기설씨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과거사위는 유서가 김씨의 자필이라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과 필적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공정성 문제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경찰 과거사위가 사건기록의 분석ㆍ검토나 유서원본 필적 감정 등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과거사위나 검찰 주장대로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감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경찰 과거사위 발표는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찰을 탓하기 전에 검찰이나 사법부가 그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사건에 얼마나 진상규명 의지를 보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경찰 과거사위의 유서 원본 등 관련자료 요청에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10월 “강씨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의 과거사 정리 대상이 되는 사건의 하나로 검토하겠다”고 말했으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다. 검찰이 과거사 규명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넘어 규명작업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일부에서는 경찰 과거사위 발표를 검ㆍ경 수사권 조정문제와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으나 적절치 않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의혹을 규명하는 것과 수사권 조정문제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검찰은 뒷전에서 이러쿵저러쿵 할 게 아니라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자체 조사를 하지 않으려면 일체의 자료를 경찰 과거사위에 넘겨야 한다.
이 달 1일부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발표돼 수사자료를 공개할 근거도 생겼다. 검찰은 국방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과 달리 과거사 규명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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