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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박 세번째 개인전'/ 가난한 달에 붓을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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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박 세번째 개인전'/ 가난한 달에 붓을 담그고…

입력
2005.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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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어느 날, 멀리서 딸랑딸랑 두부장사의 종소리가 들릴 것 같고 한쪽 골목에서는 고단한 아줌마가 우는 아기를 등에 업고 지나갈 것만 같은 산동네다. 진하게 묻어나는 삶의 쓸쓸함에 가슴이 휑하니 시려온다.

작업실 근처 지붕의 가옥들을 그린 작품으로 199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영박(58)씨. 수상 이후 5년이 지나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고, 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여는 이번 전시가 고작 3번째다.

어떻게 해서든 매년 한차례씩은 전시회를 하려 드는, 그러다 보니 습작부터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작품까지 내놓고 전시하는 요즘 풍토에서 보면 고지식하고 답답한 구석이 있다. 그만큼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진솔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5년 만에 내놓은 판자촌이나 산동네의 뒷골목 풍경에는 여전히 신파조 유행가 가락과도 같은 애잔함이 묻어난다. 감각적이며 현대적인 젊은 작가들의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풍경을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게 그려보기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크게 마음에 와 닿지가 않더라고요. 이상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많이 나는 장소에 자꾸 이끌렸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힘들게 아등바등 살아봤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짤막한 설명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씨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스케치북과 연필만 들고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떠난다. 돌아다니다가 마음이 붙잡히는 곳에서 드로잉을 하고 작업실로 돌아오면 곧바로 유화작업에 들어간다.

그의 그림은 두껍다. 재질감이 느껴지는 게 좋아 캔버스에 석고가루 같은 것을 두텁게 입힌 후 그 위에 물감을 칠한다. 두꺼운 화면을 긁어내거나 뿌리는 작업도 많이 한다. 묵묵히 그림을 그려온 그의 세월만큼이나 터치김도 진중하다.

서울의 월곡동, 난곡, 경동시장, 청계천의 낮은 지붕을 그려낸 ‘삶-내일을 기다리며’ 시리즈 외에 황혼이 지는 들녘이나 바닷가, 갈대 등 제주도, 경남 창원 등 국내 여러 곳의 풍경도 담아냈다. 화폭 표면에 굵게 긁힌 유화 자국이 진눈개비처럼, 요즘처럼 살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처럼 마음속에 깊숙이 전해진다.

“여행처럼 좋은 게 없어요. 그림보다 좋으냐고요? 하하.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림 때문이고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건데요? 그림이 빠진 여행도, 그림이 빠진 내 삶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워낙 사물과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무겁고 신중한 그다 보니, 이번에 보고 나면 또 한참 후에나 어렵게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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