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을 극적으로 보인 사례라는 점과 파괴된 인간생명체가 없었다고 하는 점에서 그렇다.
이 사건을 통해 반성과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먼저 전문가의 윤리에 대한 원론적인 지적과 각성이 다시 있어야겠다.
비윤리적인 전문성과 지식은 세상과 사람들을 어지럽게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특유의 동력에 상처를 준다. 화산과 같이 일어나는 우리 민족의 기질은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와 2002년 월드컵 때의 응원에 이어 난자 제공 행렬에까지 이어졌다.
그 행렬에 민족의 힘과 감동을 했다. 그러나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전문가의 윤리는 일반인의 그것보다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문제는 비윤리성에 대한 사후의 응징이 아니라 사전에 어떻게 예방하느냐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문제만 살펴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생명윤리와 관련되어 진행되는 논의를 생명 옹호론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황우석 사건과 같은 일은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동안 가톨릭계의 목소리만 종교 조직의 힘에 실려 그것도 가볍게 언론에 반영됐을 뿐 그 이외에 생명옹호론자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생명 옹호론자로서 배아 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학술적 주장을 여기서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다. 다만 배아복제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복제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복제란과 수정란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복제에 성공하여 세포 분열을 시작한 배아는 일정한 발달과정을 거쳐 인간으로 탄생하는 인간 생명체라는 점이다. 단지 면역학적 문제로 수정란이 아닌 핵 치환의 복제란을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핵 치환된 생명체와 탄생한 생명체 사이는 그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인간성을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요, 동일한 생명체라는 점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막연히 불치병의 치유 가능성이라는 가설로 이러한 본질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생명 옹호론자의 주장처럼 배아복제를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소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생명 옹호론자들의 말에 귀를 열고 공정한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며 이들을 국가의 정책결정에 참여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 옹호론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명과학기술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구성을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 위원회는 각 7인의 정부 위원, 과학계 위원, 기타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계 위원 7인은 배아복제 허용론에 기울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고, 기타 위원 7인의 면면 역시 종래 배아복제 허용론을 따르는 인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고 배아복제 금지론자는 가톨릭 신부인 한 명에 불과한 것 같다.
정부 핵심부서나 관련 인사가 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확보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는 한 이 위원회의 심의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아무튼 우리 사회가 생명 옹호론에 입각한 배아복제 금지론과 배아복제 허용론의 주장이 고르게 반영되어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천수 성균관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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