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40%만이 진화론을 믿고, 20%는 아직도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믿고 있으며 분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13%에 불과한 나라.
과학적 지식에는 반지성적 태도를 보이면서 플라톤 철학이나 모네 등에 관한 인문학적 지식에는 지나치게 민감한 미국적 정서에 대해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이를 ‘인문학의 오만’이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로 국부(國富)를 쌓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더하여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연방 연구개발(R&D) 예산의 많은 부분이 테러, 국방 등 안보 분야에 과도하게 편중되고 있어 산업, 보건, 환경 등 삶의 질과 관련된 R&D의 위축을 우려하는 미국 과학 기술자들의 불만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사농공상의 신분제에 의해 전통적으로 기술을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정책에 힘입어 짧은 근대 과학기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 왔다.
70년대 신발, 장난감, 가발로 시작한 수출품이 지금은 첨단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로 대체되었다. 그 중심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과학의 눈부신 성과
금년은 특히 참여정부 들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R&D 효율화’ 노력이 가시화한 한해로 평가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달 14일 펴낸 ‘경제 무역 사회 지표로 본 대한민국’에 따르면 우리의 D램 반도체 매출액, TFT-LCD 출하량, 선박 수주량,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 등이 당당히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덕단지 출신 연구원들로 구성된 벤처기업 ‘쎄트렉아이’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토종 인공위성을 1,500만 달러에 말레이시아에 수출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으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탁 박사는 `모트 절연체 금속전이현상'을 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규명하여 `2005-2006 마르퀴즈 후즈 후' 등의 주요 세계인명사전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1월 부산에서 개최된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각국 정상들이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디지털미디어방송(DMB), 휴보 로봇에 열광하였으며 특히 와이브로는 최근 국제표준으로 지정됨으로써 우리나라가 차세대 인터넷의 세계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과학기술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2005년은 우리 과학기술이 한 차원 높게 도약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과제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우선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여성 난자 채취와 관련된 생명윤리 논란은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과학기술계와 우리 사회에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자의 열정 어린 연구개발 노력 못지않게 R&D 외적인 지원 시스템이나 사회적 환경 또한 동반하여 발전하여야 함을 깨닫게 해 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화와 교류로 상생 이뤄야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및 과학기술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의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칫 가히 폭발적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속도만큼이나 과학과 대중 간의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 특히 과학과 인문학 등 학문 분야 간 많은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과학기술을 한층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될 것이며 사회적으로 건강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할 것이다. 서로 다름에 대한 상호 이해가 있을 때 어울림과 상생의 문화로 발전해 갈 수 있으며 ‘인문학의 오만’이라는 풍자는 풍자 그 자체로 끝나야 할 것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오늘도 실험실의 밤을 밝히고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수많은 과학기술자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자.
유희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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