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좌표를 모색하고 있다…미국을 빼고.”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MS)지가 14일 폐막한 제1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대해 내린 평가다.
16개국 정상들이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을 다짐하는 선언문을 채택한 뒤 미국에서 ‘아시아에서의 소외’를 우려하는 지적들이 잇따르고 있다.
미 국무부는 15일 “EAS 회의 결과에 만족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혔다. 이 같은 논평은 일본 등 미국의 우방들이 치열한 외교적 노력으로 중국의 의도를 희석시킨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 정부에 대해 경보음을 크게 울리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할란 울만 고문은 “아시아는 미국에 이별을 고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고, 뉴스위크의 토머스 자카리아는 칼럼에서 “미국이 이토록 중요한 아시아의 회의에서 배제된 것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인구의 절반(약 31억 명)을 포함하고 교역량의 20%를 차지하는 동아시아가 정치ㆍ경제적 통합을 이뤄나가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1990년대 동아시아공동체와 EAS 구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부정적이었다. 93년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 국무장관이 “태평양에 선을 그어 가르자는 것과 같다”면서 EAS 구상을 반대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강화론을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동아시아의 단결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맞닿아 있어 미국의 경계심은 더욱 커진다. 아시아에서 ‘우리 끼리’란 목소리를 가장 크게 키우는 것도 중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시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은 동시에 유교 문화를 앞세워 정서적으로도 가깝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특히 급속도로 중국의 영향권 내로 들어선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이 신문은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는 묘한 처지에 있다”면서 “부산 APEC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면전에서 이라크 병력감축 발표를 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처지가 대조를 이뤘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감소는 미국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4일 요미우리 신문 기고문에서 “21세기는 틀림없이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만 집착하고 있어 일본을 뺀 아시아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가 시큰둥해졌다”고 말했다.
아미티지 전 부장관은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일본이 한국ㆍ중국 등과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 편에 서려는 바람에 주변국으로부터 인심을 잃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중국전문가美그로스연구원/“美영향력 위축되지 않을것”
미 대서양 협회의 중국 전문가 도널드 그로스 선임 연구원은 15일(현지시간)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퇴조하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아시아 국가들의 결속 움직임이 미국의 영향력 위축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로스 연구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미국은 중국에 밀려나기보다, 오히려 중국과의‘윈 윈’ 관계를 설정해 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할수있다”고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아시아에서의 미국퇴조의 신호탄인가.
“미국이 아시아에서 유지하고 있는 군사력,경제 교류의 정도, 미국 문화가 갖는 영향력은 다른 초강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에 막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과도 상호 득이 되는 안정적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위축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고보는가.
“중일 관계는 단순하게 견제와 균형 관계로만 볼수는 없다. 일본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해야 하지만 경제분야에서 협력도 증진시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미국은 아태경제협력체(APEC)와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을 아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견제하는게 아니라, 교류를확대해 함께 과실을 챙기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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