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치러지는 볼리비아 대선에서 코카 재배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원주민 출신의 좌파 후보 에보 모랄레스(46) 사회주의운동당(MAS) 당수가 선두를 달리고 있어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붓고 있어 모랄레스 후보가 당선할 경우 미국이 남미에서 전개하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에 중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모랄레스는 가난한 원주민 인디오 농민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코카 재배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 농민 계층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1980년대부터 미국이 주도한 코카 재배 금지조치로 인해 농민 대다수가 수입을 얻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34%의 지지율을 받아 최대 라이벌인 중도우파 호르헤 키로가 전 대통령을 5%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코카렐로(코카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코카 재배의 목적은 마약 코카인을 제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며 슈퍼마켓 등에서 코카 잎을 마시는 차나 종교적 의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모랄레스는 코카 재배 농부 출신으로 1993년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후 95년 MAS를 창당한 좌파주의자다. 97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반미(美), 반 시장주의를 내세우며 2002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가 이번에 재기할 경우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남미에서 또 다른 좌파 정권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국의 코카인 사용이 늘어난 데에는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증가가 원인이라고 판단, 코카 재배를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조치를 계속 취하도록 볼리비아 정부를 압박해왔다.
숀 맥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16일 “워싱턴은 오랫동안 볼리비아 정부의 반 마약 정책을 지원해 왔다”며 “새 정부도 같은 정책을 이끌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국제위기그룹의 마크 슈나이더는 “미국이 새 정부와의 온전한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며 “그러나 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미국에 악몽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20여년 전부터 매년 1억 5,000만 달러를 지원하며 코카 재배지를 없애는 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매년 68톤의 코카가 재배돼 그 중 최소 절반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볼리비아는 콜롬비아, 페루에 이어 세계 3위 코카 재배국이다.
이번 대선에서 인디오의 피를 물려 받은 모랄레스가 당선되면 남미 최초로 원주민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모랄레스가 과반수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내년 1월 국회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는데 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실제로 정권을 이끌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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