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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장편소설 '페스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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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장편소설 '페스트' 출간

입력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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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의 인류에게 ‘페스트’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욕망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거대한 스크린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지 혹은 미지의 위험, 인간 이성과 지식의 통제를 벗어난 자연과 신의 재앙의 상징으로서, 세상의 괴저를 드러내는 장치나 인간 본질을 폭로하는 거울로서, 여전히 멸진하지 않은 질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알베르 카뮈가 치명적 전염성을 지닌 이 병균 ‘파스튜렐라 페스티스’의 노예도시 오랑을, 또 고름 찬 현대성의 질병을 보다 못한 주제 사라마구가 ‘눈 먼 자들의 도시’를 거울처럼 들이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작가 최수철씨가 다시 이 끔찍한 봉인을 뜯었다. 그의 신작 장편 ‘페스트’(전2권)는 그 제목의 무게만큼 무겁고 어두운 소설이다.

‘무망’이라는 가상의 도시 위로 죽음의 재가 흩뿌려지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연쇄적 자살사건. 멀쩡한 회사원, 주부, 학생…, 신분과 나이는 물론이고 그 사연조차 오리무중인 자기파괴의 행렬은, 중세의 페스트처럼 그 어떤 이론과 설명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재앙이다. 당연히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제 딸을, 제 아내를, 제 이웃을 의심한다. 그들의 사소한 눈빛과 행동에서 자멸의 징후를 찾는다. ‘삶과 죽음의 칼날’ 위에 얹힌 이 속수무책의 도시는 혼란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점차 두려움과 분노, 광기에 휘말려 든다.

서사는 도시의 자살예방센터(OSP) 부책임자와 정신과의사, 가수, 무용수, 영화감독, 목사, 작가 등 다양한 인물들이 연쇄자살의 미궁 속에서 활로를 찾아 분투하는 행적을 따라간다.

작가는 이들의 입을 통해 삶과 죽음, 자살의 의미, 그 유형 및 원인 등에 대한 깊고 다양한 철학ㆍ종교ㆍ정신의학적 해법과 인류학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소설 속 작가가 그의 칼럼에서 적었듯, “이 글은 지구상의 한 도시에 몰아 닥친 죽음의 광기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이자, 그 광기를 치유하기 위해 씌어지는 임상 기록이기도”(1권 73쪽)한 셈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삶을 좀 더 절실하게 살아갈 수 있지요.(1-118쪽)“

-혹시 타락한 언어가 자살의 원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우리에게는 언어의 혁신이 필요해요. 너무 오랫동안 똑 같은 말로 살고 싸우고 떠들고 생각하기를 계속해오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치고 병들어 버린 겁니다(1-204쪽)

-절망과 유혹은 통하는 것이고, 극단적인 절망과 극단적인 유혹은 하나로 합쳐지는데, 그것이 곧 죽음이다.(1-339쪽)

-인간은 오만해졌어요. 인간의 오만함이 우리를 불멸에 대한 욕망뿐만 아니라 죽음의 충동으로도 이끕니다. 인간의 오만함 앞에서 불멸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충동은 하나입니다.(2-178쪽)

이들의 분투는 스스로에게 내재된 죽음의 욕망에의 저항이기도 하다. 그 처절한 싸움의 과정과 귀결이, 최수철씨 특유의 내향적 사유의 문장과 치밀한 외향적 구성으로, 균형감 있게 이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의 말처럼 “죽음은 인간의 보편적 성질과 깊숙이 맞닿아 있는 것”(2-339쪽)이고 한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모두에게 동시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 “무망이 곧 세계이고, 세계가 곧 무망”(1-363쪽)이어서 카뮈의 ‘오랑’도 우리가 사는 지금 이 도시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작가의 이 새로운 발성의 ‘메멘토 모리(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우리에게 뼈아픈 자극이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의 소설이 ‘자살=악, 생존=선’이라는 종교적 이분법의 구릉 너머에 펼쳐진 만큼 책을 읽는 동안 “종잇장에 손가락이 베지 않도록 조심하시길.”(1-119쪽)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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