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시대적 소임을 일정부분 다한 상황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투자은행(IB)’으로의 변신을 적극 꾀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영역의 위축을 우려하는 금융계의 시선이 곱지 않아 국책은행의 변신을 둘러싸고 치열한 영역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이란 펀드운용을 통해 기업에 지분투자를 하거나 기업 인수ㆍ합병(M&A) 중개 역할을 하는 은행으로, 미국계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등이 대표적이다.
▦투자업무 영역 확대 재정경제부는 15일 산업은행의 금융자회사에 대한 출자총액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차관회의에 상정했다고 밝혔다. 이 안은 조만간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사모투자펀드(PEF), 인프라펀드, 투자조합 등 금융자회사에 대한 출자한도가 현행 자기자본의 15%에서 20%로 늘어난다. 현재 자기자본이 13조8,600억원인 만큼, 약 6,000억원을 추가 출자할 수 있다.
개정안은 또 산은이 중소기업 구조조정이나 프로젝트 금융지원 대상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금융사업에 대한 주식담보대출 제한 예외를 인정했으며, 부품소재전문투자조합이나 기업구조조정조합 등에 대한 출자에 대해서도 한도 예외를 인정했다.
재경부는 내년 중 현재 기존 거래법인에만 허용되는 M&A 자금대출을 신규 거래법인에도 허용하도록 산은법 개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산은의 주영역인 기업금융과 함께 투자은행 역할도 본격화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지난달 취임한 김창록 산은총재는 이미 “산은은 세계적 수준의 국제투자은행을 지향해야 한다”고 밝힌 상태다.
▦민간금융계 반발 민간 금융기관에서는 산은의 변모 과정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00% 정부가 출자한 산은이 ‘국책은행’ 지위를 유지한 채 전방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면 민간영역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은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정리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 올해(10월 기준) 당기순이익이 1조7,000억원을 넘어섰고, 자산규모도 94조원에 달한다.
환란 때 인수한 대우증권과 KDB자산운용(옛 서울투신운용)도 그대로 갖고 있다. 특히 산은이 올해 회사채 발행시장 점유율을 22%로 끌어올리면서 증권업계 쪽에선 “국책은행이 시장을 휩쓸어 경쟁이 안 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현재 M&A시장에서 산은의 노하우를 쫓아올 기업이 전무하다는 점도 민간 금융계가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다. 만일 내년 중 산은법이 개정된다면 M&A시장에서 산은의 위치는 더욱 확고부동해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금융으로 특화한 산업은행이 주식형 펀드 판매, 방카슈랑스 판매, 부동산투자신탁 등 소매금융업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점도 지적을 받는다. 민간 금융계에서는 “산은의 개발시대 역할이 끝났다면 민영화 방안을 포함, 새로운 위상정립을 공론화에 붙여 산은의 부실기업 정리 노하우 등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