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도청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우리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추락을 맛보았다.
하루 아침에 존경 받는 사회 원로에서 범죄자 신분으로 떨어진 인사는 물론, 수십년간 공직 생활로 쌓은 명예를 더럽힌 사람도 있었고, 가슴 속 깊이 품고있던 야망이 좌절된 이도 있었다.
이미지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두 전직 대통령. 수십년간 정보기관의 횡포에 시달리다 대통령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권 대통령’을 자임하며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개편,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도청이라는 정보기관의 ‘악습’을 묵인, 방관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공소시효 만료로 부하들의 처벌은 면했지만 김대중 정권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도청 실태가 이번 수사결과로 드러나면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안기부와 국정원의 전직 고위 간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신 건씨는 도청을 주도한 혐의로 이달 초 구속 기소돼 범죄 혐의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은 국정원의 도청 문제가 제기된 이후 줄곧 “도청을 알지도 못했고, 지시하지도 않았으며, 도청 정보를 보고 받은 적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혐의를 벗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은성 전 차장은 도청 지시 혐의로 구속기소 돼 국민의 정부 말기 진승현 게이트로 사법처리된 데 이어 또다시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수일 전 차장은 검찰에서 전직 원장들의 도청 연루 사실을 시인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주미 대사로 재직하다 이번 사건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던 홍석현씨는 결국 유엔 사무총장의 꿈을 접지 않을 수 없게 됐다. 7월 공개된 녹음테이프에서 그는 19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 사장 신분으로 ‘정경언(政經言) 유착행위’의 주역을 맡은 사실이 백일하에 공개됐다. 배후로 의심 받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장기 외유를 떠나 여전히 귀국하지 않고 있다.
‘삼성 떡값’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린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과 홍석조 광주고검장 등 검찰 고위간부들도 명예에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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