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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스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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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스무디

입력
200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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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바빠지고, 간편함은 미덕이 되면서 이전에 없던 음식 형태가 속속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패스트 푸드일 것이고, 예서 더 발전한 것이 삼각 김밥이나 즉석 비빔밥처럼 영양까지 고려한 메뉴들일 것이다.

그 가운데 스무디(smoothie)라는 이름의 다소 생소한 아이템이 있다. ‘부드러운 것’이라고 직역해야 할까? 아무튼 스무디라는 먹거리는 이름 만큼이나 스무드하다.

스무디의 재료를 보면 대개 과일이나 차 분말 등에 요구르트나 우유, 아이스크림이나 후로즌 요거트 등의 유제품을 섞게 된다. 유제품을 쓰기 때문에 그만큼 부드럽고, 또 일반적인 주스와 구별된다. 스무디는 첨가하는 유제품의 유지방 함량에 따라 그 칼로리와 지방 비율을 조절할 수 있고, 고르는 과일이나 기타 부재료에 따라 영양소의 균형 또한 맞춤으로 할 수 있으니.

바쁘고, 까다롭고, 남과 달라야 하는 21세기 소비자들에게 딱 맞는 식단이다. 스무디라는 음식의 성격은 지금의 젊은 세대와 닮아 있다. 빠르고 편한 가운데 실속이 있는 것.

스무디가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이 바로 ‘골라 먹는 맛’인데, 그 다양함에 따른 선택권은 현대의 소비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일방적인 소비가 아닌, 고르고 요구하는 소비의 ‘주체’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서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비단 쇼핑에만 나타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나의 강의를 통해, 혹은 요리를 매개로 한 이 메일이나 편지를 거쳐 만나게 되는 신세대들은 사랑에 있어서도 ‘골라 먹는 맛’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하니까.

물론, 인터넷의 다음 카페에 개설된 ‘박재은의 팬 카페’ 회원 5,000여명이 밝힌 성향을 두고 신세대 전체를 진단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세대의 분위기를 대강 파악할 수는 있는 것이다.

신세대들의 사랑은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경향이 짙다. 자신에 대한 파악이 나이에 비해 정확하여 자신이 찾는 사랑이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용어를 빌면 “빠삭”하다. 그런 점이 스무디 같은 ‘신(新) 먹거리’와 닮았으니, 내가 만든 스무디 레써피 몇 가지를 예로 보자.

● 두유 바나나 스무디

우유 대신 두유를 쓰고 거기에 바나나를 툭툭 잘라 넣어 믹서기에 간다. 여기에 곱게 빻은 아몬드 가루를 더하여 고소한 악센트를 줄 수도 있는데, 두유의 단백질과 바나나의 칼륨이 만나 좋은 영양식이 되고 포만감도 오래 간다. 함께 운동을 즐기는 역동적인 커플에게 권할 만하다.

● 딸기 요거트 스무디

냉동 딸기나 생 딸기에다 떠먹는 요거트를 부어서 믹서기에 가는 것이다.

여기에 키위를 더하거나 레몬즙을 조금 뿌리면 비타민 함량이 올라간다. 감기 예방이나 피로 회복에 그만이고, 입맛이 없는 겨울철에 더욱 좋다. 봄에 값이 내린 딸기를 왕창 갈아서 얼려 두면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는데, 예쁜 찻집이나 갤러리를 찾아 다니거나 미식을 즐기는 문화적인 커플에게 어울린다.

● 사우어 홍시 스무디

말캉한 홍시에 감식초를 더하여 신 맛이 강한 스무디로, 신 맛을 뜻하는 ‘사우어(sour)'를 이름에 붙여 봤다. 발효 식품인 식초를 첨가하므로 소화 효소의 분비를 돕고, 피부가 고와진다.

역시 떠 먹는 요거트와 함께 가는데, 신 맛이 너무 강할 때에는 꿀을 조금 넣어준다. 홍시의 타닌 성분이 변비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이런 증상이 있다면 감의 양을 조절한다. 청계천 중고 시장을 뒤지고, 종로 골목의 술 한 잔을 즐길 줄 아는 풍류 커플의 숙취 해소에 좋겠다.

● 녹차 스무디

우유에 저지방 분유와 가루 녹차를 넣어 갈아 낸 맛이다.

고소하고 달지 않아서 뒷맛이 깔끔하다. 보온병에 넣어 저온만 유지할 수 있다면, 우유의 단백질과 녹차의 미네랄과 카페인의 상승 효과로 시험 기간의 좋은 간식이 될 듯. 도서관 데이트가 잦은 커플이라면 서로를 위해 준비해 봄직하다.

● 쵸코 커피 스무디

잘게 다진 쵸코렛이나 코코아 가루와 짙게 우린 커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섞어서 갈아 내는 음료다. 식사 후에 마시면 근사한 디저트가 되고, 눈이 내리는 오후에는 따뜻하게 데워 마셔도 좋다.

사랑을 부르는 식 재료라는 카카오가 섞였으니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이나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사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메뉴.

입맛 따라, 기분 따라 골라 먹는 맛은 신소비 세대를 겨냥하는 브랜드들의 생존 전략이다. 편지가 오고, 다시 답장이 가던 우편 세대나, 메시지를 남기고 호출을 하면 공중 전화를 찾아서 들은 다음 다시 답 전화를 걸 수 있었던 삐삐 세대와는 다른, 쿨하고 실리적인 웹세대의 기호가 대개 그러하다.

최근 신세대 신부湧?겨냥하여 선보인 어느 다이아몬드 브랜드의 광고 카피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결혼도 쇼핑이다.” 입맛 따라 고르고 또 골라서 흥정 잘 하고 포장 잘 하라는 말인가 싶어, 내게는 반감을 주는 광고지만.

그러고 보면 신세대들의 사랑을 가볍고 타산적으로 몰아 가는 이들은 바로 기성 세대가 아닌가 싶다. 골라 먹는 맛대로 만난 사랑이라도 그 맛에 온전히 취하면, 그 때부터는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신파가 되는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마술이니까 말이다.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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