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 의한 감시’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어 단어 ‘수베일런스(sousveillance)’는 캐나다 출신의 정보통신 전문가 스티브 만이 창안한 신조어이다.
‘감시’라는 뜻의 영어단어 ‘서베일런스(surveillance)’가 프랑스어로 ‘위에서’를 뜻하는 전치사 쉬르(sur)와 ‘경계하다’라는 동사 뵈이에(veiller)를 합친 말에서 파생한 것에 빗대어 ‘아래에서’를 뜻하는 전치사 수(sous)를 뵈이에에 붙여서 만든 말이다.
그래서 현대영어에서 ‘서베일런스’는 권력기관이나 힘을 가진 자의 감시를, ‘수베일런스’는 힘없는 대중이자 감시 당하던 이들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에 의한 감시'도 권력화
신기술의 발달로 대중들이 정부기관은 물론 은행 백화점과 대형빌딩, 지하철 곳곳에서 더 많이, 더 쉽게 감시를 받게 된 것에 맞서서 대중들이 권력을 가진 기관이나 업체를 감시하는 것을 만은 이렇게 불렀다. 그러면서 12월 24일을 ‘세계 수베일런스의 날’로 제정해 감시당하는 자들이 감시하는 자들을 감시하자고 주창하기도 했다.
서베일런스가 날로 다양해지는 것이 폐쇄회로텔레비전이나 소형렌즈, 녹음기와 같은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면 수베일런스 역시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 같은 신기술의 보급으로 가능했다.
여기에 인터넷이 가세하면서 권력 앞에 미약하던 개인은 그 자신이 미디어가 되어서 의제를 설정하고 골방에 숨어있는 사연도 전세계로 타전할 수 있게 됐다. 스티브 만은 대중이 무력한 개인에 머물지 말고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뜻에서 개념을 만들었지만 신기술의 발달로 이제 대중 자체가 가공할 권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에 의한 감시도, 대중에 의한 감시도 극한까지 간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국정원의 불법도청이 권력에 의한 감시의 추악상을 드러냈다면 황우석 교수 연구의 문제점을 처음 보도한 문화방송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대운동은 대중의 감시 역시 권력의 감시 못지 않게 지나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느 쪽에도 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구성원 누구나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제 한국사회는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 차원 높은 논의를 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권력의 행사와 감시 행위에 대해서 보다 정교하게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단지 과거의 기준으로 권력기관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누구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몰려가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판단해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민주주의 구성원 모두가 맡아주어야 한다. 또한 언론을 보는 관점도 언론에게 맡겨진 역할이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과연 진짜 권력을 겨냥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권력의 주인은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 달라지고 있다. 행정부나 사법부나 입법부는 여전히 권력이지만 그 힘은 예전 같지 않다. 신문 방송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개인, 특히 스타의 힘은 이런 권력을 능가할 때가 많다. 가령 공연기획사가 스타들을 빌미로 방송사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공연기획사가 방송사보다 더 큰 권력이다.
과학자 한 사람은 미약한 개인일 수도 있지만 그가 국가를 위해 공헌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대중들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서 어떤 비평도 가할 수 없게 한다면 그것은 권력이다. 절대권력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다시 그 권력에 문제점은 없는지 비판할 권리를 갖는다.
●언론은 절대권력 비판 계속해야
황우석씨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구원할 스타로 떠올라 그에게 국가예산이 투입되고 온갖 중요한 자리가 쏟아진다면 그는 바르게 연구하고 행동하고 있는가를 비판받아야 하는 권력이 된다.
그의 권력을 비판하는 방식에서 틀린 점이 있다면 그것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언론이 권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는다면 한국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로 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서화숙 대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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