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전남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폭설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오리 축사를 살펴보던 강영수(47)씨는 “말할 기운도 없다”며 눈물을 떨궜다. 강씨의 오리 축사는 16개 동 6,000평. 최근 계속된 폭설로 축사는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돼 버렸다.
애지중지 키우던 오리 1만9,000마리도 땅 속에 묻었다. 강씨는 “계속된 폭설로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해 아예 철거하고 있다”이라며 “조류독감의 악몽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됐는데 이젠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호남지역이 눈 속에 파묻히고 있다. 첫 눈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린 4일 이후 사흘이 멀다 하고 10~30㎝가량의 ‘폭설 테러’가 계속되면서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구멍 뚫린 하늘을 보면 공포감마저 듭니다.” 나주시 남평읍에서 아욱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문용식(49)씨는 이 날도 어김없이 쏟아지는 눈을 보며 치를 떨었다.
문씨는 “전체 비닐하우스 25개 동 가운데 11개 동이 폭삭 주저앉아 8,000여만원의 피해가 났다”며 “폭설이 계속 내리고 쌓인 눈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제설작업도 못하고 있어 올해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탄식했다.
사상 유래 없는 폭설 대란으로 농민들은 죽을 맛이다. 특히 피해 농가 대부분은 수천만원 이상의 빚을 안고 있는 데다 폭설로 하루 아침에 생활터전을 잃어 삶의 희망마저 꺾인 상태다.
영암에서 오리 사육을 하는 양정희(41)는 “폭설로 축사 대부분을 잃었지만 무허가라는 이유로 복구비 지원도 못 받고 있다. 담보물이 없어 농협대출도 못 받는데…. 정말 살기 싫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전북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 이상의 폭설이 두 차례나 내린 정읍시 감곡면 방교리 주민들은 폭설로 인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 마을 이갑봉(59)씨는 “무와 배추가 폭설과 혹한으로 모두 얼어버렸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내리는 눈만 쳐다보는 것 뿐”이라며 “농사를 망친 마을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라고 말했다.
폭설 속 강추위가 지속되면서 자원봉사자의 손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데다 그나마 군과 경찰마저도 도로사정 악화 등을 이유로 북구를 위한 지원이 중단되기 일쑤다.
이날 전남지역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인력은 서울시와 경남도 공무원 113명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폭설 피해 복구과정에서 외면당하고 있다는 소외감과 절망감에 싸여 있다.
딸기 비닐하우스 1,200평을 폭설로 잃은 김종복(51ㆍ함평군 나산면)씨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서울에 사는 자식들까지 내려와 겨우 복구작업을 시작했다”며 “재해지역선포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우선 필요한 인력 지원을 늘려 더 이상 피해가 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실제 폭설피해가 가장 컸던 비닐하우스는 전남의 경우 전체 피해면적 601㏊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263㏊ 정도가 복구되는 데 그쳤다. 인삼재배시설 복구율도 60%를 넘지 못했다.
이처럼 피해복구가 지연된 데다 당분간 눈이 더 내릴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추가 피해가 우려돼 폭설 피해액은 현재 전남 1,375억원과 전북 4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전남도 관계자는 “폭설과 한파가 한낮에도 계속되면서 피해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피해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호남 폭설 피해농가에 농업경영자금을 1,000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광주에 100억원, 전남ㆍ북에 각각 150억원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
이날 우리당 전남ㆍ북지역 의원들은 폭설피해가 심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요구했으나 정부 측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읍=최수학기자 shchoi@hk.co.kr영암=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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