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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 번쯤 겪을 시련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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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 번쯤 겪을 시련치곤…

입력
200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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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혹한이 몰아치는 가운데 지금 우리는 지독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사회 곳곳에 극한 대립과 정면충돌의 파열음이 가득하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날을 세우며 대립하고, 사학법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의 싸움판이 장외로 번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지만 쌀 시장 개방에 분개한 농민들의 한 맺힌 고함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고, 혁신도시 선정을 둘러싼 삭발과 데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순간인데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놓고 벌어지는 답답한 진위 논란을 지켜보며 마음은 혼란스럽고 무겁기만 하다. 이제 보름을 남긴 2006년의 출발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모든 혼란과 고통이 모두 더 나은,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에서 한번쯤 겪어야 할 시련이라고 위로해 보지만, 희망의 단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반세기 압축성장의 터널을 통과하느라 온갖 검댕이 다 달라붙었는데, 그 중 가장 독한 것이 증오와 원한 그리고 불신의 검버섯들이다.

●대립·분열로 얼룩진 한해

돌이켜 보면 일 년 내내 우리는 서로 미워하며 물어뜯고 싸우고 욕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결국 막돼먹은, 막가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국무총리는 “전체적으로 민주화 이후 구조적으로나 현상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말했다지만, 그렇게 막가파식 상쟁과 분열로 들끓으면서도 버텨내는 게 용할 따름이다.

대통령이 걱정해 마지않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도 어려운데, 2005년 12월 15일 한국 사회는 천지 사방 다극으로 분열되어 싸우다 생긴 피멍과 상처로 범벅이 되어 있다.

IT, BT, NT 등 첨단을 달린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이렇게 황폐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실은 우리 모두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고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습벽이 있었다. 그것은 우상을 파괴하고 기성권위를 부정하는 탈레반식 평등주의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때로는 관청으로, 학교로, 공장으로, 때로는 광화문으로 몰려가 아우성을 치고 때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붉은 악마가 되어 한반도가 떠나가도록 함성을 지르곤 했다. 그 결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의식구조가 굳고 넓게 뿌리를 내렸다.

토머스 L 프리드먼은 ‘세계가 평평하다’ 했지만 우리야말로 처절하리만큼 평평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돈과 권력,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그러나 한번 잃으면 다시 또 얻기 어려운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자신과 이웃, 익명의 동시대인들을 ‘우리’라고 묶는 존중의 마음, 대립과 갈등을 용서와 화해로 이끌어 주는 원로와 스승, 어른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몰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성숙한 사회 너무도 멀어

급기야는 날로 황폐화하는 환부를 어루만지고 치유의 희망을 불어 넣어야 할 원로들마저도 스스로 갈등에 가담하거나 편을 드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니, 난세에 영웅은커녕 지혜를 구할 현인들마저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반세기 이상 엄청난 고통을 겪고서 무언가 이룬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성숙한 사회는 이토록 멀고 힘든 것인가.

오늘부터 새해 벽두까지만이라도 증오와 불신을 버리고 싸움을 멈출 수는 없을까. 상대가 죽어야 이기는 싸움은 정작 따지고 보면 싸울 가치가 없는 싸움인 경우가 많다. 조금만 앞서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진리인데 언제까지나 뒤늦게 파탄을 보고 나서야 후회의 탄식을 내뱉어야 하는가.

새해까지 기다리지 말고 올해 말, 지금부터라도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서서 평화의 촛불을 켜자. 입만 떼면 읊었던 상생의 서약들을 이제 한번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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