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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눈꽃 여행 - 내장산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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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눈꽃 여행 - 내장산 절경

입력
200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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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폭설에 남도가 된서리를 맞았다. 나그네의 입장에서야 순백으로 가득 찬 눈꽃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지만, 비탄에 잠긴 농심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길 나서기가 그래서 괜히 켕기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여행을 향락과 동일시한 우(愚). 눈의 장막 아래, 숨어 있는 아름다움도 있다. 조심스레 전북 정읍의 내장산을 찾았다.

워낙 단풍 명산으로 이름나서일까. 단풍이 사라진 내장산은 인적마저 끊어져 고즈넉하기만 하다. 하지만 진정한 명산은 계절의 구애를 받지 아니한다.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의 3홍(三紅)을 보낸 겨울 내장산, 그 곳에 만산백설(萬山白雪)이 있다. 등잔밑이 어두웠다. 겨울 진산(珍山)이 바로 거기 있었다.

관리사무소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3㎞. 유명한 단풍 터널이다. 붉은 기운을 뽐내며 늘어선 단풍나무들은 소담스런 설목으로 변신했다. 몇몇 가지들은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해 축 늘어졌고, 더러는 가지가 부러져 나가기도 했다.

단풍의 창고였던 우화정 일대 연못도 흰 문으로 덮여, 더 이상 거울 노릇을 못 한다. 그러나 정자로 이어지는 돌 다리가 있다. 거기 수북 쌓인 눈이 빚어내는 아취를 보라. 가을 단풍의 현란함에 비길 바 아니다.

속살을 들여다 보기 위해 일주문에서 오른쪽 길을 택했다. 벽련암(碧蓮庵)으로 가는 길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차량 통행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 제법 가파른 길을 엉금엉금 오르기 20여분. 벽련암 문루를 지나니 서래봉을 지붕 삼은 벽련암이 눈앞에 펼쳐진다.

순백만 존재할 것 같은 세상에서 화려한 단층을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적막이 감도는 절에 찾아온 나그네가 반가운지 안쓰러운지 절 주인인 대우 스님이 객을 방으로 들게 해, 차를 권한다.

절 이름은 사찰이 들어 앉은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그래서일까, 손님에게 내놓는 차도 연꽃차이다. “여름에는 초록이 짙어 벽련암으로 불리지만, 눈이 지배하는 겨울만큼은 백련암”이라며 껄껄 웃는다.

그러고 보니 사찰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서래봉 중턱에 호젓하게 앉은 모습이 영락없는 연꽃 형상이다. 원래 내장사로 불렸으나 일주문 옆의 새 사찰에 그 이름을 내주고 백련암으로, 다시 벽련암으로 고쳐 불리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고내장(高內藏)으로 부르는 것이 이 연유라고 한다.

한참 절집 설명에 열중하던 스님이 대뜸 하늘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문을 나선다. 첩첩산중에서 바다라니…, 궁금증을 이길 수 없어 따라 나섰다.

문루에 드니 넓은 평상 끝자락에 방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방석에 머리를 배고, 거꾸로 누워 서래봉을 바라보았다. 눈에 들어온 광경은 전도된 세상 그 자체이다. 거꾸로 뒤집힌 대웅전과 서래봉을 담은 하늘, 아니 바다가 거기 있었다. 말마따나 하늘 바다가 거기 있었다. 뜻모를 감동이 전해진다.

거기서 원적암으로 가는 길에는 겨울 산행의 묘미가 기다리고 있다. 평평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깊은 겨울속으로 들어간다. 자세히 보니 순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붉은 색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제법 늘어섰다. 아직 빛 바래지 않은 단풍인가 했는데, 바로 감나무다. 단풍과 함께 시작된 감이었지만, 훨씬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임자가 없으니 따는 이도 없다.

그 색이 바래지려면 이듬 해 2월이나 돼야 한다고 한다. 짓궂은 관광객이 나무를 흔들어 댄다. 익을대로 익어 바닥에 떨어진 감을 한 입 베니, 홍시가 따로 없다.

원적암 입구에는 백색을 거부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다. 보기 드문 비자나무군락(천연기념물 153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은 제주에서 시작된 비자나무 군락의 한반도 최북단 서식지. 제 아무리 많은 눈이 온들 그 푸르름을 뒤덮지는 못 한다.

원적암에서 다시 일주문으로 향하는 이른바 단풍 터널길. 눈이 쌓여, 눈이 부시다. 그 날렵한 내장사 처마를 뒤덮은 고드름에 오후 햇살이 통과하며 바야흐로 빛의 희롱이 시작된다.

앞뜰에 자리한 감나무가 루비 같은 빛을 발하며 한 해의 끝자락을 알렸다. 겸재 정선이 이 곳을 그렸다면 진경(眞景)이 아니라, 진경(珍景) 산수화라 하지 않았을까.

내장산(정읍)=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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