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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의인화ㆍ개인화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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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의인화ㆍ개인화의 비극

입력
200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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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세상 탓’ 못지않게 ‘자기 탓’을 잘한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운명의 주인으로 보는 ‘문화적 관념론’에 투철하고, 군사용어로 말하자면 적진을 향해 개별적으로 돌진하는 ‘각개약진(各個躍進)’에 능하다. 이는 자원이 빈약한 좁은 땅에서 동질적인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다 보니 갖게 된 특성으로 기존의 ‘동양_서양’ 이분법으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의 각개약진 문화엔 명암이 있다. 그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뤄낸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모든 문제를 개인과 가족 단위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피곤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지도자에 찬양·저주 양극단

문화적 관념론은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사람’과 ‘개인’을 강조한다. 한국인의 독특한 ‘지도자 추종주의’는 바로 그 산물이다. 언론매체의 뉴스도 ‘사람’과 ‘개인’에 치중한 나머지 ‘의인화’와 ‘개인화’ 일변도다.

‘의인화’는 생명이 없는 사물 또는 추상적 관념에 인간적 성질 또는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개인화’는 한 개인 주체를 역사나 중요한 사건의 원동력으로 부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의인화ㆍ개인화 문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극단으로 끌고 간 곳이 바로 북한이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그런 문화가 남한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말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지도자 추종주의는 한국인의 공통된 기질이다.

지도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과도한 열광과 비난은 양 극단을 형성하고 있지만 양쪽 모두 의인화ㆍ개인화의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선 상통한다.

많은 이들이 한국인은 사람을 키우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한국인만큼 사람에 빠져 몰입하길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이 양 극단의 모습 역시 의인화ㆍ개인화의 산물이다. 저주와 찬양이 모두 사회구조와 관계를 무시하고 오직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해방 정국의 극심한 좌우 갈등과 요인 암살에서부터 오늘날 개혁 노선이 ‘인적 청산’이나 ‘인물 교체’에 집중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는 의인화ㆍ개인화가 지배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에서 수입해온 좌파 이념을 수용한 사람들이 사회구조와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들 역시 ‘인적 청산’을 선호하고 이들 내부 문화도 의인화ㆍ개인화의 지배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선거 제도와 인터넷의 유희 코드도 한국에선 의인화ㆍ개인화 문화를 강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과도한 기대와 실망의 사이클이다. 그건 의인화ㆍ개인화 문화에 내재해 있는 것이기에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PD 수첩’ 파동도 상당 부분은 ‘의인화ㆍ개인화의 비극’이다.

●PD수첩 파동도 거기서 기인

지난해 10월 미국 대선에서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뜨거운 쟁점이었다. 이 연구를 ‘생명 파괴’로 단정했던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의 입장은 종교적 관점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바티칸 교황청도 “치료 목적의 배아복제는 인간복제보다 더 나쁘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한 이 문제에 관한 한 종교적 우파와 이념적 좌파가 같은 입장을 취하는 바람에 이념 갈등이 잘 부각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는 본질적으로 뜨거운 이념투쟁을 유발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 모든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대해서만 의인화ㆍ개인화 코드로 접근했다. 심지어 이에 도전한 PD 수첩의 취재방식도 의인화ㆍ개인화 코드로 무장했다. 취재윤리마저 지키지 않았다. 이 문제가 ‘폭발’한 동시에 쉽게 풀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는 의인화ㆍ개인화의 함정에 빠져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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