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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장대한 영상, 뻔한 스토리를 압도하다 '킹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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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장대한 영상, 뻔한 스토리를 압도하다 '킹콩'

입력
200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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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관심과 화제를 불러 모았던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이 마침내 14일 전세계에서 동시 개봉됐다.

‘킹콩’은 인생을 예찬하는 흥겨운 재즈 선율과 비루한 도시 빈민의 모습을 교차 시키는 영화 도입부가 암시하듯 전반에 걸쳐 시종 극명한 대립구도로 이야기를 전개 한다.

도시와 서구인으로 대변되는 문명과, 킹콩과 해골 섬으로 표현되는 야만이 충돌을 일으키며 긴장의 끈을 조이고, 여기에 미녀와 야수의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연애담이 중심 축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반미치광이 영화 감독(잭 블랙)이 촬영을 위해 스태프와 배우를 이끌고 해골 섬에 당도한 후 거대한 고릴라 킹콩과 조우하고, 이어 뉴욕에 끌려 온 킹콩이 탈출해 미녀 앤(나오미 와츠)과 함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쌍엽전투기와 대치하다 최후를 맞는 줄거리는 1933년 원작과 거의 동일하다.

팜므파탈 영화를 연상 시키는 “그를 죽인 것은 비행기가 아니다. 미녀가 야수를 죽였다”(It wasn’t the airplanes. It was the beauty killed the beast)는 유명한 대사도 반복된다. 앤과 연인 사이인 시나리오 작가 잭(애드리안 브로디)이 원작에서는 마초적인 일등 항해사였다는 것이 그나마 다른 점.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바람에 자칫 상투적이고 뻔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잭슨 감독이 흥행의 지렛대로 삼은 것은 테크놀러지이다. 2억700만 달러(약 2,200억원)라는 영화사상 최다 제작비를 쏟아 부어 구현해낸 장대한 화면은 180분의 긴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혼(魂)을 불어 넣은 킹콩은 슬픔과 기쁨, 분노, 호기심 등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표정과 거친 숨결까지 완벽하게 ‘연기’한다. 금방이라도 스크린을 박차고 튀어나올듯한 동작 하나하나에 생동감이 넘친다.

킹콩에 대한 앤의 호감이 단순히 ‘스톡홀름 신드롬’(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호감을 드러내는 심리현상)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마음의 교감으로까지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것 역시 테크놀러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정밀하게 스크린에 되살린 공룡의 모습도 ‘쥬라기 공원’ 시리즈보다 진일보했다. 30년대 뉴욕의 전경을 재현해낸 꼼꼼한 손길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계곡을 질주하며 거대한 초식 공룡을 뒤쫓는 육식공룡의 사냥 장면과 킹콩과 티라노사우루스 3마리가 벌이는 일대 활극, 뉴욕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전투기를 박살 내는 킹콩의 포효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거대한 ‘공갈빵’을 연상시키는 과도한 스펙타클에 거부감이 느껴질 만도 한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첨단 테크놀러지의 무차별 공습은 관객들에게 미처 정신을 추스릴 만한 여유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홉 살 때부터 꿈꿔온 필생의 작품이라는 중압감에 짓눌린 탓인지 모처럼 리메이크된 영화에 잭슨 감독의 새로운 해석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이어 그가 빚어내는 환상의 공간은 일부 관객에게는 자칫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문득 33년 대공황 시절의 뉴욕으로 돌아가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문명과 야만의 충돌을 통해 오늘날의 세계를 다시 보고자 한 것일까.

대단히 기이하고 애틋한 로맨스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었을까. 스크린에서 명료한 대답을 찾기는 힘들다. 유별난 재능과 집착을 지닌 한 감독의 유년시절 욕망이 만들어낸 첨단 블록버스터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혹은 ‘킹콩’이 지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15세.

● '골룸'이 킹콩 됐네!

'반지의 제왕' 앤디 서키스… 킹통의 표정·동작도 연기

1933년에 만들어진 '원조' 킹콩의 키는 영화 속에서 18m로 설정됐다. 스톱 애니메이션과 스크린 프로세스 기법을 사용해 창조해낸 킹콩은 지금은 유치해보이지만 당시에는 놀라운 볼거리였다.

피터 잭슨 감독이 빚어낸 킹콩의 키는 원조보다는 크게 왜소한 7.6m. 하지만 33년생 킹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압적이고 생생하다. 엄청나게 진화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 덕분임은 물론이다.

상상 속의 고릴라 킹콩에 생명을 불어 넣는 과정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골룸의 탄생과 유사하다. 골룸을 연기했던 앤디 서키스(해골 섬을 향해 항해하는 배의 요리사 역도 맡았다)가 이번에는 킹콩에 얼굴 표정과 몸 동작을 빌려 주었다. 앤디 서키스는 이를 위해 2주간 아프리카 르완다를 여행하며 야생 속의 고릴라를 관찰했다. 그리하여 고릴라의 습성이나 행동뿐 아니라 발성법까지 익혔다.

잭슨 감독이 이끄는 특수효과 전문업체 웨타 디지털은 미니어처로 만든 킹콩을 스캔하고 모션캡쳐 기술을 이용, 앤디 서키스의 다양한 표정과 동작 연기 위에 킹콩의 모습을 입혔다. 하지만 사람과 비슷한 골룸에 적용한 기술만으로는 완벽한 킹콩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인간의 연기에다 고릴라의 안면 근육과 골격구조를 자연스럽게 덧씌울 수 있는 별도의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2년 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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