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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부서진 꿈, 그 다음의 선택은… '내 미국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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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부서진 꿈, 그 다음의 선택은… '내 미국 삼촌'

입력
200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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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영화에 들떠 안달할 사람이 있겠고, 꼬리 사리며 돌아설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뉴웨이브의 신화라고 일컬어지는 이 거장의 기왕의 영화들(국내 개봉관에 걸린 것은 ‘히로시마 내사랑’이 유일했고, ‘스모킹’ 등 나머지는 소극장에서만 상연됐다)의 난해함이 그러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그의 이번 영화 ‘내 미국 삼촌’(1980년작)은 어렵지 않다. 군살 없이 날렵하고, 치밀하지만 투명하다. 다만 지적인 긴장과 미학적 감성은 최대치로 벼리고 보자.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한다. 인텔리이자 정치적 야심가인 ‘쟝’과 그의 순정한 정부(情婦) ‘자닌’, 또 자수성가한 샐러리맨 ‘르네’가 그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각기 다른 영ㆍ유년 체험과 성장사, 성년의 그들이 겪는 시련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배신과 실연, 실직의 위기가 이들이 겪는 시련과 갈등의 겉면이라면, 그 속에는 세상의 폭력과 기만, 분노와 경쟁,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탐욕의 메커니즘이 잠복해 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뇌의 영역(대뇌피질), 제도나 도덕, 이성적 억압의 다른 이름들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행동심리학자 앙리 라보리의 이론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라보리는 이 영화에 실제로 출연, 그의 이론을 설명하기도 하고, 실험을 통해 흰쥐와 인간의 행태와 대비하기도 한다.

유아기의 체험이 성년의 행동심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무의식이 어떻게 일상에 발현되는지, 또 인간의 억압기제가 적절히 해소되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등…, 알랭 레네는 그의 이론을 철학적ㆍ미학적 영상을 통해 설명하고 암시한다.

라보리의 이론에 따르면, 억압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먼저, 맞서는 방식이 있는데 이는 공방의 악순환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억압을 수용하는 방식도 가능한데 이 역시 마땅히 뻗어야 할 분노의 주먹을 자신에게 되돌려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마지막이 ‘도피’다. 술이나 담배 등 화학적 도피도 있고, 공간이나 관계를 회피하고 교체하는 지리적 도피, 그리고 예술적 도피가 그것이다. 영화 속 세 인물이 겪는 억압(배신과 실연, 실직)에 대한 다양한 대응전략과 결말을 라보리의 설명에 대입, 그 이론과 실제의 맥락을 맞춰보는 것도 흥미롭다.

청년기 마르셀 프루스트의 세례(의식의 흐름)를 받았다는 알랭 레네는 그의 만년의 화두였던 인간 존재의 문제를 이 철학적 영상으로 압축했다.

영화의 장면마다 영화속 인물들이 좋아하는 장 가뱅의 흑백영화나 장 마레의 연극 장면 등을 삽입(인터커팅ㆍ간격편집), 행위에 개입하는 무의식과 기억의 지배기제를 미학적으로 암시한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만든 당신의 올해의 영화 베스트 리스트가 있다면, 아마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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