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조연배우는 없다’ 단골 조연배우들이 보조역에서 벗어나 영화의 주역으로 비상하고 있다.
1994년 ‘우리 시대의 사랑’에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줄곧 주인공 주변을 서성였던 성지루는 내년 2월 중순 개봉하는 스릴러 ‘손님은 왕이다’(감독 오기현)에서 이발사 역으로 주연을 꿰찼다.
한때 “한국영화는 명계남이 나온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떠돌 만큼 여러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해온 명계남도 50줄 나이에 같은 영화에서 이발사를 협박하는 의문의 손님 역을 맡아 주연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코믹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진 최성국과 신이도 ‘신분상승’에 성공한 케이스. 9일 촬영을 마친 로맨틱 코미디 ‘구세주’(감독 김정우)에서 나란히 극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연극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온 박광정도 영화출연 13년 만에 주연배우 자리에 올랐다. 아내의 불륜을 좇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중인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감독 김태식)가 그의 첫 주연작.
오랫동안 누나 엄정화의 그림자에 가렸던 엄태웅은 TV드라마 ‘부활’에 이어 ‘가족의 탄생’(감독 김태용)에서 주연의 영광을 안았다. ‘가문의 영광’에서 김정은의 조직폭력배 오빠로 나와 강한 인상을 남긴 박상욱도 ‘러브하우스’(감독 김판수)를 통해 9년의 무명시절을 털어내고 주연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실 충무로에서 이런 현상은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이범수 이문식 김수로 등이 앞서의 대표적인 사례. 개성과 성실을 무기로 한발한발 주연 자리에 다가선 이들은 이제 출연료가 억대를 훌쩍 넘어서는 스타배우로 자리 잡았다.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조연 배우들의 주연 변신은 한국영화산업 현실의 한 반영이다. 스타파워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에 따라 주연배우들의 출연료도 끝없이 치솟아 제작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탄한 시나리오에다, 상대적으로 출연료가 저렴한 조연급 배우를 잘만 골라 적합한 역을 맡기면 충분히 본전은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
가령 ‘손님은 왕이다’의 전체 출연료는 순 제작비 19억5,000만원의 20%정도. 웬만한 스타배우 한 명의 한편 출연료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마케팅 비용과 영화표 할인 등 몇 가지 변수를 제외하고 단순계산 했을 때 관객 60만 명 정도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특급 스타는 아니지만, 조연 출신 주연배우 들이 이전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수치다.
‘구세주’의 제작사 익영영화사의 이정이 팀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이들 배우들의 출연료가 캐스팅에 고려된 것은 사실이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영화계 전반적으로 선택 폭이 넓어지는 효과도 가져 올 것”이라며 긍정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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