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동성(同性)간 생활공동체에 이성간의 결혼과 유사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제주지법 정재오 판사는 최근 발표한 ‘동성 사이의 생활공동체-독일의 개정 생활동반체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우리나라는 동성 사이의 생활공동체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동성 사이의 각종 법적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가 동성간 생활공동체 관련 법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7월 인천지법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던 두 여성간의 민사소송 선고가 난 후부터다.
원고 A씨는 “B씨와 동거하면서 피고 명의로 공동재산을 축적했는데 피고의 폭행과 협박으로 사실혼 관계가 파탄났다”며 B씨를 상대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담당 재판부는 “혼인은 남녀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의미하므로 동성간 사실혼 관계는 사회관념이나 가족질서 측면에서 용인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 판사는 이에 대해 “관련 법이 없는 상황에서 동성간 생활공동체의 법적 분쟁에 대해 혼인법을 유추 적용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는 국회의 입법사항을 사법부가 결정하는 것으로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가 참고 법률로 제시한 안은 독일에서 2001년 8월 발효돼 한 차례 개정을 거친 ‘동성간의 공동체에 대한 차별의 철폐에 관한 법률(개정 생활동반체법)’이다. 이 법률은 동성간 생활공동체를 혼인과 상당 부분에서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활동반체법에 따르면 동성 커플간 생활공동체 성립 약속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어 이 약속에 대해서 민법상 약혼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 따라서 약혼의 경우와 같이 파혼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과 약혼선물반환청구권 등을 인정 받게 되는 것이다.
정 판사는 “동성간의 생활 공동체에 대한 법적 기초를 제공하는 입법이 이뤄진다면 동성애적인 사람들이 인격권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성적 취향에 의해 사회로부터 받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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